야구에서 8점 차는 보통 승부가 끝난 점수로 봅니다.
그런데 8월 18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롯데가 7회 한 이닝에만 13점을 뽑아 그 격차를 지웠습니다. 한 이닝 13득점 위로는 KBO 역사에 단 하나의 기록만 있습니다.
이런 이닝은 왜, 어떤 조건에서 만들어질까요.
3줄 요약
1. 롯데가 7회 13득점으로 0-8을 뒤집었습니다
2. 한 이닝 13점은 KBO 공동 2위, 1위는 16점
3. 무너진 쪽은 타선이 아니라 불펜이었습니다
한 이닝 13점 위에는 16점 하나뿐
KBO리그에서 한 이닝에 13점이 난 것은 역대 공동 2위 기록입니다. 그 위에 있는 유일한 기록은 2019년 4월 7일 한화 이글스가 세운 16득점인데, 공교롭게도 그 경기 역시 사직구장에서 롯데를 상대로 나왔습니다. 같은 구장에서 이번에는 롯데가 반대편에 섰던 셈입니다.
구단 안에서 보면 더 뚜렷합니다. 롯데의 종전 한 이닝 최다 득점은 11점으로, 2011년 10월 사직 한화전과 1995년 6월 대구 삼성전 두 차례뿐이었습니다. 30년 넘는 구단 역사에서 11점이 벽이었던 셈인데, 이번에 13점으로 새로 썼습니다.
숫자를 이렇게 늘어놓는 이유는 하나입니다. 이런 이닝은 우연히 방망이가 잘 맞아서 나오지 않습니다. 13점을 내려면 한 이닝에 최소 열여섯 번 이상 타석이 돌아야 하고, 그러려면 아웃카운트를 잡아줄 투수가 그 시간 동안 계속 못 잡아야 합니다.
무사 만루는 안타 하나로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18일 경기는 6회까지 완전히 키움 쪽이었습니다. 1회 맷 데이비슨의 2점 홈런, 2회 추재현의 3점 홈런을 포함한 대량 득점, 6회 추가 1점으로 8-0. 키움 선발 전준표는 6이닝 95구 3피안타 무실점으로 데뷔 첫 퀄리티스타트를 달성하고 첫 선발승을 눈앞에 뒀습니다.
7회, 전준표가 마운드를 내려가면서 경기가 바뀌었습니다. 전민재의 볼넷, 장두성의 타구 때 나온 유격수 실책, 손성빈의 볼넷으로 무사 만루가 만들어졌습니다. 안타는 한 개도 없었습니다. 황성빈의 2타점 2루타로 첫 점수가 났고, 나승엽의 볼넷으로 다시 만루가 된 뒤 빅터 레이예스의 적시타가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한동희의 만루 홈런이 나왔습니다. 개인 통산 5번째이자 2022년 6월 이후 1525일 만의 그랜드슬램이었습니다. 순식간에 7-8, 한 점 차였습니다.
2사 후에도 끝나지 않았습니다. 전민재와 장두성의 연속 안타로 다시 기회가 만들어졌고, 손성빈이 10구 승부 끝에 좌중간 2타점 2루타를 때려 9-8로 뒤집었습니다. 이후 황성빈·나승엽·레이예스·한동희의 방망이가 계속 이어져 13-8. 이날 롯데는 16안타에 선발 타자 전원 안타를 기록했고, 레이예스는 KBO 역대 25번째 3시즌 연속 150안타를 달성했습니다. 최종 스코어는 15-10이었습니다.
불펜 평균자책점 14.77이 말해주는 것
여기서 눈여겨볼 숫자는 13이 아니라 다른 쪽에 있습니다. 키움은 그 7회 한 이닝에만 구원투수 5명을 올렸습니다. 다섯 명이 나와서도 아웃카운트 세 개를 잡는 동안 13점을 내줬다는 뜻입니다.
19일 경기 전 기준으로 키움의 최근 5경기 불펜 평균자책점은 14.77이었습니다. 8월 한 달 팀 평균자책점 6.59는 10개 구단 가운데 가장 나쁜 수치였습니다. 반면 키움 타선은 8월 10경기에서 타율 0.272, 91안타 47득점으로 오히려 시즌 평균보다 나았습니다. 최근 부진의 무게가 타선이 아니라 불펜 쪽에 실려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구조는 바로 다음 날 한 번 더 확인됩니다. 19일 경기에서 키움은 9회까지 앞서 있었지만 손성빈의 동점 솔로 홈런에 이어 구원투수 원종현의 폭투가 나오면서 5-4로 졌습니다. 이틀 연속, 그것도 정반대 방식이었습니다. 하루는 8점 차가 한 이닝에 사라졌고, 다음 날은 한 점 차 균형이 마지막 순간에 무너졌습니다. 리드를 잡는 것과 지키는 것은 다른 일이라는 걸 이틀에 걸쳐 보여준 셈입니다.
큰 점수 차를 볼 때 확인할 것
8점 차 역전이 드문 이유는 타선이 폭발하기 어려워서가 아니라, 그만큼 오래 아웃을 못 잡는 마운드가 드물어서입니다. 그래서 큰 점수 차 경기를 볼 때 점수판보다 먼저 볼 것은 리드한 팀의 불펜 상태입니다. 선발이 몇 회까지 갈 수 있는지, 앞선 경기에서 구원투수를 몇 명이나 썼는지가 실제 안전 마진을 결정합니다.
이 시리즈는 그 점에서 교과서에 가까웠습니다. 18일 경기 전까지 키움 불펜은 이미 8월 내내 리그 최하위 성적을 쌓아두고 있었고, 8점 리드는 그 위에 얹힌 숫자였습니다.
참고
- 뉴스핌, 한겨레, 뉴시스, 뉴스1, 머니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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