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D현대중공업이 미국 조선소를 인수한다는 이야기가 이번 주 내내 나왔습니다.
정작 회사는 21일 한국거래소에 낸 답변에서 확정된 바 없다고 밝혔습니다.
그런데도 후보 도시 이름까지 거론될 만큼 이야기가 구체적입니다. 왜 하필 지금, 미국 땅의 조선소를 사야 하는 걸까요.
3줄 요약
1. HD현대에 필요한 건 미국 안의 조선소입니다
2. 한화오션은 이미 미국 조선소를 갖췄습니다
3. 확정 여부는 9월 18일 재공시에 드러납니다
각서 한 장이 자격을 갈랐습니다
미국 정부 문서 한 장이 이번 이야기의 출발점입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13일 국가안보각서에 서명했습니다. 미국 조선소에 상당하고 지속적인 투자를 한 외국 조선업체에 한해, 미 해군 함정 최대 2척을 본국 조선소에서 지을 수 있게 해주는 내용입니다.
여기서 오해하기 쉬운 대목이 하나 있습니다. 미국 배를 미국에서만 짓게 만든 조치가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에 가깝습니다. 조건을 채운 업체는 초도 2척을 한국 조선소에서 건조해도 됩니다.
대신 그 자격을 얻는 문턱에 미국 땅이 들어갑니다. 미국에 새 조선소를 짓거나, 미국 내 기존 조선소의 소유권 또는 과반 지분을 확보한 업체만 해외 건조 자격을 얻습니다. 백악관이 공개한 각서에는 여기에 더해 미국인 고용과 훈련, 조선 기술 이전, 미국 내 공급망 확보도 조건으로 붙어 있습니다. 대상 함정은 수상 전투함, 군수지원 유조선, 그리고 차량이 스스로 오르내리는 방식의 로로(Ro-Ro) 수송선입니다.
그래서 미국 조선소는 물량을 찍어낼 공장이라기보다 입장권에 가깝습니다. HD현대중공업은 지금 그 입장권이 없습니다.
한화오션은 이미 그 조건을 채웠습니다
조건을 이미 충족한 국내 회사가 있습니다. 한화오션입니다. 한화오션과 한화시스템은 2024년 12월 미국 필라델피아의 필리조선소를 인수했고, 최근에는 호주 조선·방산업체 오스탈의 미국 자회사인 오스탈 USA 인수까지 추진하고 있습니다. 국내 조선사 가운데 미국이 내건 조건을 채운 곳은 현재로선 한화오션뿐입니다.
HD현대는 다른 방식으로 접촉면을 넓혀왔습니다. 미국 최대 군함 조선업체인 헌팅턴잉걸스인더스트리(HII)와 함정 건조·생산기술 협력을 확대해왔고, 중간지주사인 HD한국조선해양은 지난 7월 미국 조선업체 프레이저인더스트리와 조선소 현대화를 지원하는 업무협약을 맺었습니다. 협력은 쌓았지만 자기 명의의 미국 조선소는 없었던 셈입니다. 이번 인수설이 나온 자리가 바로 여기입니다.
샌디에이고와 텍사스가 거론되는 이유
조선일보 단독 보도에 따르면 HD현대는 미국 조선소 2~3곳을 후보로 압축해 협상을 진행 중입니다. 거론되는 지역은 미 해군 태평양함대의 핵심 거점인 샌디에이고, 그리고 조선·해양플랜트 공급망이 밀집한 텍사스 걸프 연안입니다. 함정 수요가 몰린 곳과 부품·인력이 이미 모여 있는 곳, 둘 중 하나씩입니다.
원래는 지난달 23일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 조선협력센터 개소식에 맞춰 인수를 발표하는 방안도 검토됐지만, 막판 가격 협상에서 이견이 생겨 무산된 것으로 전해집니다. 해사신문에 따르면 인수 창구로는 HD현대가 지난 5월 세운 미국 투자법인이 거론되고, 미국 사모펀드 서버러스 캐피탈 및 한국산업은행과 조성한 수십억 달러 규모 공동 투자 프로그램도 활용될 전망입니다.
이 대목에서 눈여겨볼 건 후보지 이름이 아니라 가격입니다. 한화는 2024년 필리조선소를 1억 달러에 인수했습니다. 지금은 미국 정부의 조선업 재건 정책과 한국 기업들의 투자 수요가 겹치면서 현지 조선소들이 높은 값을 부르고 있다고 전해집니다. 같은 급의 조선소를 같은 값에 살 수 있던 시기는 지나간 셈입니다.
거래소가 묻자 "확정된 바 없다"고 답했습니다
한국거래소는 21일 오전 8시 52분 이 보도와 관련해 조회공시를 요구했습니다. 상장사에 "이 보도가 사실이냐"고 공식으로 묻는 절차입니다. 톱스타뉴스 보도에 따르면 HD현대중공업은 "미국 현지 조선소 인수나 지분 투자를 검토 및 협의하고 있는 것은 맞으나 아직 확정된 바는 없다"고 답했습니다. 그리고 구체적인 내용이 정해지는 시점, 늦어도 9월 18일까지는 다시 공시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검토는 인정하고 확정은 부인한 답입니다. 소문과 사실의 경계가 어디인지 여기서 드러납니다. 후보지도, 협상 상대도, 자금 창구도 아직 회사가 확인해준 적 없는 이야기입니다.
지금 확실한 건 각서가 정한 조건과 회사의 공식 답변, 그리고 한 달 안에 다시 나올 공시 일정뿐입니다. 어느 도시가 낙점되는지는 그날 알게 됩니다. 그보다 왜 미국 땅의 조선소가 반드시 필요해졌는지를 기억해두면, 다음 소식이 나왔을 때 그게 큰 걸음인지 작은 걸음인지 스스로 가늠할 수 있습니다.
참고
- 더팩트, 조선일보, 해사신문, 톱스타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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