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이 다 비켜간 여름, 밀양 저수지 바닥이 갈라진 이유

2026년 8월 24일 · 한국

올여름 태풍은 8월 중순까지 열일곱 개가 만들어졌습니다.

그런데 그중 한반도에 상륙한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같은 시간 경남 밀양에서는 저수지 바닥이 쩍쩍 갈라졌고, 남산마을 주민 80명은 밤마다 수돗물을 잠갔습니다.

태풍은 물난리를 부르기도 하지만, 가뭄을 씻어내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열일곱 개가 지나가는 동안 남부지방은 무엇을 놓친 걸까요.

3줄 요약
1. 태풍 17개가 발생했지만 국내 상륙은 없었습니다
2. 밀양 저수율 25.7%, 평년은 74.5%입니다
3. 해갈 여부는 저수율 회복으로 확인합니다

열일곱 번째 태풍도 일본으로 갔습니다

8월 13일 오전 3시 기준 17호 태풍 '낭카'는 괌 북쪽 약 1,290㎞ 해상에서 북북동진하고 있었습니다. 도쿄 남동쪽 먼바다를 지나 일본 동쪽 해상으로 올라가는 경로였고, 이대로면 태풍 중심은 한반도에서 1,800㎞ 이상 떨어진 채 지나갑니다.

앞서 지나간 태풍들도 사정은 비슷했습니다. 15호 태풍 '찬홈'은 일본 열도를 관통한 뒤 12일 온대저기압으로 변질됐습니다. 태풍으로서의 수명은 거기서 끝났지만 저기압 자체는 남아 동해안에 동풍과 비를 밀어 넣었습니다. 13호 태풍 '돌핀'은 중국 동부에 상륙해 내륙 깊숙이 들어간 뒤 열대저압부로 약해졌습니다. 뉴스1 보도를 보면 두 태풍은 한반도를 직접 덮치진 않았지만 이웃 나라에는 실제 피해를 남겼습니다. 상하이에서 항공편 943편이 취소됐고, 일본에서는 2만 2,000가구 넘게 정전됐습니다.

'상륙 0'이 '영향 0'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6호 태풍 '장미'는 6월 2일 남해동부바깥먼바다에 태풍경보가 내려지며 올해 첫 영향 태풍으로 기록됐습니다. 다만 그때도 육상에 직접 닿은 것은 없었습니다.

태풍들이 한국만 비켜간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폭염을 만든 고기압 두 겹이 한반도 상공을 두껍게 덮으면서, 태풍이 올라올 길목 자체를 막아버렸습니다. 문제는 이 장벽이 만든 게 폭염만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저수율 25.7%, 평년은 74.5%

뉴스트리 보도에 따르면 밀양에서 50년째 농사를 짓는 한 농민은 "살면서 이런 가뭄은 처음"이라고 했습니다. 마른 논밭에 물을 조금이라도 대려고 마을 사람들끼리 서로 눈을 부라린다고 합니다. 남산마을에서는 공동생활용수로 쓰던 지하수가 말라, 처음 6시간이던 단수가 지금은 밤마다 8시간으로 늘었습니다.

숫자로 보면 더 뚜렷합니다. 8월 12일 오후 5시 기준 밀양의 농업용 저수지 평균 저수율은 25.7%, 평년 74.5%의 3분의 1 수준입니다. 경남 전체 평균도 33.3%에 그쳤습니다. 경남 18개 시·군 가운데 함양을 뺀 17곳에 농업용수 가뭄 단계가 내려졌고, 밀양·거제·함안은 최고 단계인 '심각'에 들어갔습니다. 벼와 과수, 밭작물을 합쳐 5,703 농가, 2,121헥타르에서 피해가 집계됐습니다.

마시는 물은 지역에 따라 사정이 갈립니다. 광역상수도가 들어오는 곳의 생활용수 공급은 정부 설명대로 정상적으로 이뤄지고 있습니다. 끊긴 곳은 그 관이 닿지 않는 데입니다. 지하수 같은 소규모 시설에 기대는 경남 도서지역 27곳은 제한급수나 비상급수 상태이고, 급수선과 병물까지 들어갔습니다. 다만 상수원 자체도 여유롭진 않아서, 대구·경산의 주요 식수원인 운문댐 저수율은 24.7%까지 떨어졌습니다.

정부는 8월 11일 경남에 국가소방동원령을 발령했습니다. 전국에서 소방 물탱크차 200대와 소방대원 400명이 투입돼 저수지와 논밭에 직접 물을 채웠습니다. 가뭄으로 이 동원령이 내려진 건 지난해 강릉에 이어 두 번째입니다. 호남평야에 물을 대는 섬진강댐 저수율도 18.5%로 떨어졌는데, 이 댐 운영부장은 YTN 사이언스 인터뷰에서 "태풍이 오더라도 피해 없이 비만 내렸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마른 장마가 먼저 있었습니다

태풍이 오지 않은 것만이 원인은 아닙니다. 애초에 올해 남부지방 장마가 말랐습니다. 경남의 6월 강수량은 93.9㎜로 평년의 절반 수준이었고, 7월은 68㎜로 평년 304.7㎜의 21.9%에 그쳤습니다. 1973년 기상 관측이 시작된 뒤 6~7월 강수량으로는 가장 적습니다. 두 달간 500㎜쯤 내려야 정상인데 절반에도 못 미친 셈입니다.

여기에 7월 말부터는 티베트고기압과 북태평양고기압이 겹친 이른바 '이중 열돔'이 한반도 상공을 덮었습니다. 연일 35~40도의 열기에 땅에 남아 있던 수분과 저수지 물마저 빠르게 증발했습니다. 적게 온 데다, 있던 물까지 마른 것입니다.

필요한 비는 200㎜였습니다

8월 13일 기상청은 광복절 연휴 비 소식을 내놨습니다. 중국 상하이 부근에 머물던 저기압이 다가오면서 16일 새벽 서쪽부터 비가 시작돼 밤에는 전국으로 확대된다는 예보였습니다. 이 저기압은 태풍 돌핀이 변질된 것으로, 한겨레와 중앙일보 보도를 보면 남쪽에서 고온다습한 공기를 끌고 와 남해안과 지리산 부근에 많은 비를 뿌릴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기상청도 이 비로 가뭄이 풀린다고 말하지는 않았습니다. 당시 통보관은 "강수량이 일부 해갈에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완전한 해결까지는 확인하기 어렵다"고 밝혔습니다. 비가 그친 뒤에는 다시 체감온도 33도 안팎의 더위가 예보돼 있었습니다.

기준을 하나 잡아두면 판단이 쉬워집니다. 경남의 가뭄이 실제로 풀리려면 수일 안에 200㎜ 안팎이 내려야 합니다. 그래야 바싹 마른 토양을 적시고 남은 물이 하천을 타고 저수지로 흘러듭니다. 8월 13일 남부 곳곳에 내린 5~40㎜ 같은 비는 땅 표면만 적시고 끝납니다. "비가 왔다"는 소식과 "가뭄이 끝났다"는 말 사이에는 이만큼의 거리가 있습니다.

그래서 확인할 곳은 비 예보가 아니라 저수율입니다. 25.7%가 평년 74.5% 쪽으로 얼마나 올라갔는지, 그 한 줄이 답입니다. 저수지가 다시 차오르는 것을 보기 전까지는, 열일곱 개의 태풍이 무엇을 데려가 버렸는지 계산이 끝나지 않습니다.

참고

  • 한겨레, 중앙일보, 경기일보, 뉴스트리, JIBS 제주방송, 이데일리, YTN 사이언스, 연합뉴스TV, 이코노미톡뉴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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