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초, 숨 막히던 폭염이 갑자기 한풀 꺾였습니다.
같은 시각 일본 동쪽 바다에서는 15호 태풍 찬홈이 몸집을 키우고 있었습니다.
두 일이 겹치니 태풍 덕에 더위가 물러갔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하늘에서 벌어진 일은 그게 아니었습니다.
3줄 요약
1. 폭염을 꺾은 건 태풍이 아니라 고기압 이동입니다
2. 같은 날 서울 34.3도, 강릉은 26.7도였습니다
3. 상륙 여부보다 바람 방향을 봐야 합니다
같은 날, 서울 34.3도 강릉 26.7도
8월 10일 낮 서울은 34.3도, 광주는 32.2도까지 올랐습니다. 최고 기온이 40도를 넘나들던 지난주와 비교하면 확실히 내려간 숫자지만, 여전히 더운 날입니다.
같은 날 대구는 29.6도, 강릉은 26.7도였습니다. 서울과 강릉의 차이가 7.6도입니다. 태풍이 다가와서 더위가 물러간 것이라면, 나라 전체가 비슷하게 내려갔어야 합니다. 그런데 한쪽만 내려갔습니다.
이날을 기점으로 전국에 내려졌던 폭염경보는 모두 해제됐고, 수도권과 충남·호남에만 폭염주의보가 남았습니다. 경보가 풀린 지역과 주의보가 남은 지역이 갈린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고기압이 옮겨 앉으니 북동풍이 들어왔습니다
우리나라를 이중으로 덮고 있던 고기압 가운데 위쪽 고기압은 북서쪽으로 물러났고, 아래쪽 고기압은 중심이 북쪽으로 올라갔습니다. 이 자리 이동이 바람 방향을 바꿨습니다.
고기압은 시계 방향으로 돕니다. 시계 방향으로 도는 소용돌이의 남쪽 테두리에서는 바람이 동에서 서로 흐릅니다. 고기압 중심이 우리나라 북쪽으로 올라앉으니, 그 테두리를 타고 북동풍이 한반도로 밀려 들어온 것입니다. 북쪽에서 오는 바람이라 기온이 낮습니다.
여기서 태백산맥이 갈림길을 만듭니다. 동해에서 불어온 찬 바람은 강릉과 대구가 있는 동쪽에 먼저 닿습니다. 그래서 그쪽은 더위가 확실히 꺾였습니다. 하지만 이 바람이 산맥을 넘어가면 사정이 달라집니다. 공기가 산을 타고 내려오면서 압축되며 데워지기 때문입니다. 산 하나 건너온 바람이 서울과 광주에 도착할 때는 이미 찬 바람이 아닙니다. 33도 안팎의 더위가 서쪽에 그대로 남은 이유입니다.
이 구조에서는 동풍이 강해질수록 서쪽이 더 더워질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이 기간 서쪽 지역 낮 최고기온은 26~35도로 예보됐습니다. 같은 바람이 한쪽에는 시원함을, 다른 쪽에는 뜨거운 바람을 나눠 준 셈입니다.
태풍은 일본에 상륙하며 구조가 무너졌습니다
찬홈이 아무 역할도 안 했다는 뜻은 아닙니다. 8월 9일 오전 9시 기준 찬홈은 도쿄 동남동쪽 약 1,110㎞ 해상에 있었고, 중심기압 994헥토파스칼, 최대풍속 초속 21m였습니다. 다음 날 초속 27m까지 세력을 키울 것으로 예상됐고, 위성에서는 태풍 특유의 회오리 구조가 뚜렷하게 잡히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11일 일본 혼슈 동부에 상륙하면서 구조는 빠르게 무너졌습니다. 국제신문 보도에 따르면 이 여파로 하네다·나리타 두 공항에서 60편 가까운 항공편이 결항했습니다. 태풍은 12일께 열대저압부로 약해지고, 13일께는 독도 동남동쪽 약 120㎞ 부근까지 접근할 것으로 예상됐습니다.
우리나라에 영향을 준 것은 태풍이 소멸한 다음입니다. 태풍이 흩어져도 그 안에 있던 수증기 덩어리는 남아 동해 쪽으로 빠져나갑니다. 이 수증기 때문에 동해안과 경남 지역에 목요일쯤 비가 내릴 수 있다고 봤습니다. 다만 강한 비는 아닐 것으로 예상됐습니다.
예보 숫자가 100㎜에서 60㎜로 내려간 이유
여기가 눈여겨볼 대목입니다. 9일 시점 예보에서는 강원 동해안·산지와 경북 북부 동해안에 100~150㎜ 이상의 많은 비가 쏟아질 곳도 있다고 했습니다. 이틀 뒤 11일 예보에서는 동해안 강수량이 최대 60㎜로 내려왔습니다.
숫자가 반 이하로 줄어든 것은 예보가 틀렸다는 뜻이 아닙니다. 태풍이 예상보다 일찍 세력을 잃으면 딸려 오는 수증기도 줄어듭니다. 태풍 예보가 하루 이틀 사이에 크게 바뀌는 것은 이렇게 태풍 자체가 변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태풍 예보는 처음 나온 숫자보다 가장 최근 숫자가 맞습니다.
다음 태풍 소식을 들을 때 쓸 만한 기준은 이렇습니다. 우리나라에 상륙하느냐만 보면 절반만 보는 것입니다. 상륙하지 않는 태풍도 바람 방향을 틀어 우리 동네 기온을 바꾸고, 소멸한 태풍도 수증기를 남겨 비를 뿌립니다. 이번에 폭염을 꺾은 것은 태풍이 아니라 고기압이 옮겨 앉은 자리였고, 비를 뿌린 것은 태풍이 아니라 태풍이 남긴 수증기였습니다.
찬홈은 우리나라 땅을 밟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그 주 날씨는 찬홈이 있고 없고에 따라 달라졌습니다. 태풍은 경로 위에 있을 때만 태풍이 아닙니다.
참고
- SBS, 주간조선, 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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