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3위 선수가 32강에서 이겼습니다.
그런데 이 경기를 전한 기사 제목에는 이긴 선수보다 안세영이라는 이름이 더 자주 붙었습니다.
왕즈이가 이긴 경기인데, 왜 안세영이 화제일까요.
3줄 요약
1. 왕즈이가 19일 뉴델리 32강에서 2-0으로 이겼습니다
2. 안세영에게는 최근 13번 중 12번 졌습니다
3. 이 대회 왕즈이의 최고 성적은 8강입니다
21-16, 21-9, 그리고 3번 시드
19일(한국시간) 인도 뉴델리 인디라 간디 체육관. 왕즈이(세계 3위·중국)는 카루파테반 렛사나(세계 31위·말레이시아)를 21-16, 21-9로 눌렀습니다. 엑스포츠뉴스에 따르면 1게임 초반부터 주도권을 쥐었고, 상대가 따라붙을 때마다 인터벌(게임 중간 휴식) 직전에 점수를 몰아 흐름을 끊었습니다. 통산 네 번째 세계선수권 출전이고, 지난해 16강 탈락은 일단 넘어섰습니다.
여기까지는 순위표대로입니다. 화제가 된 건 그다음입니다.
같은 매체에 따르면 왕즈이는 이번 대회에서 3번 시드를 받았습니다. 대진이 순위대로 풀리면 세계 1위 안세영(삼성생명)과 만나는 자리가 결승이 아니라 준결승이 됩니다. 중국으로서는 결승에 닿기도 전에 가장 넘기 어려운 상대를 만나는 대진이고, 한국 팬 입장에서는 4강이 사실상 결승인 셈입니다.
시드가 뭔지 알면 이 대진이 왜 화제인지도 같이 풀립니다. 시드는 상위 선수들이 초반부터 서로 만나 떨어지는 일이 없도록 대진표를 위아래로 갈라 놓는 장치입니다. 1번과 2번은 결승까지 가야 만나도록 반대쪽 끝에 놓이고, 3번과 4번은 그렇게 갈라진 두 구역에 하나씩 들어갑니다. 3번 자리를 받는다는 건 1번이나 2번을 준결승에서 만난다는 뜻입니다.
최근 흐름만 보면 이런 주목을 받을 성적은 아니었습니다. 5월 싱가포르 오픈 3위, 인도네시아 오픈 16강 탈락, 7월 일본 오픈 8강, 중국 오픈 4강 — 석 달 동안 결승 무대를 한 번도 밟지 못했고, 그사이 세계 2위 자리를 야마구치 아카네(일본)에게 내줬습니다.
13번 붙어서 12번
연합뉴스에 따르면 안세영은 왕즈이를 상대로 전영오픈을 제외한 최근 13번의 맞대결에서 12승을 거뒀습니다. 세계 2위 야마구치와의 최근 5경기도 모두 이겼고, 오랫동안 까다로운 상대였던 천위페이(세계 4위·중국)에게는 4연승 중입니다.
순위표에는 1위와 3위, 두 계단 차이로 적혀 있습니다. 코트에서 나온 숫자는 그 두 계단보다 훨씬 큽니다.
이 격차가 왕즈이의 최근 부진 때문에 생긴 것도 아닙니다. 그는 한동안 안세영 다음가는 선수로 꼽히던 시기에도 같은 상대에게 계속 졌습니다. 이번 대회에서 눈여겨볼 숫자는 세계랭킹이 아니라 이 12승 쪽입니다.
변수는 왕즈이가 아니라 왼발
그래서 실제 변수는 상대가 아니라 안세영 자신의 몸입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안세영은 지난달 일본 오픈에서 부상으로 우승 행진이 끊겼고, 왼발 통증을 완전히 털어내지 못한 채 이번 대회에 나섰습니다. 훈련은 정상적으로 소화했습니다. MBC뉴스는 한 달 만의 부상 복귀전을 두고 "100%는 아니어도 승리"라고 전했습니다. 관건은 경기를 치르며 감각을 얼마나 빨리 끌어올리느냐입니다. 남은 경기에서 발 상태를 가늠할 잣대는 승패보다 경기 시간입니다. 짧게 끝낼수록 길게 끄는 랠리를 덜 견뎠다는 뜻이니까요.
일정도 함께 봐야 합니다. 이번 세계선수권은 8월 23일 끝나고, 아시안게임은 9월 19일 개막합니다. 약 한 달 간격으로 큰 대회 두 개가 이어지는 일정입니다. 안세영은 아시안게임에서 1994년 히로시마 금메달리스트 방수현도 이루지 못한 한국 여자 단식 최초의 2연패에 도전합니다. 4강 한 경기의 무게가 그 대회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뜻입니다.
15년 무관, 그리고 개인 최고 8강
왕즈이는 대회를 앞두고 중국 관영 방송 CCTV 인터뷰에서 "중국 여자 단식이 15년간 세계선수권 우승을 하지 못했다는 것은 모두가 안다"며 우승을 대표팀 목표로 내걸었습니다. 각오는 분명한데, 그 목표까지의 거리도 분명합니다. 이 대회에서 왕즈이의 개인 최고 성적은 2023년 8강입니다. 결승에 올라 본 적이 아직 없습니다.
당장 다음 상대부터 만만치 않습니다. 16강에서는 지난해 자신을 탈락시킨 푸살라 V. 신두(세계 9위·인도)와 장원위(세계 49위·캐나다)의 승자를 만납니다. 신두를 넘고 8강까지 통과해야 안세영과의 4강 대진이 비로소 성립합니다.
이번 대회에서 왕즈이의 이름이 계속 오르내린 건 최근 경기력 때문이 아닙니다. 대진표가 만들어 낸 화제입니다. 그 화제가 실제 4강으로 이어질지는 안세영과의 승부가 아니라 그 앞의 두 경기가 먼저 답합니다.
참고
- 엑스포츠뉴스, 연합뉴스, MBC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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