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인이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공식 데뷔전에서 데뷔골을 넣었습니다.
6만 명이 넘는 홈 관중이 지켜본 그 골에 스페인 신문들은 1면까지 내줬습니다.
그런데 같은 날, 어느 스페인 매체는 그의 이름을 전혀 다른 기사에도 올렸습니다. 왜였을까요.
3줄 요약
1. 이강인이 아틀레티코 데뷔전에서 데뷔골을 넣었습니다
2. 교체로 들어간 지 13분 만에 나온 왼발 골이었습니다
3. 다음 상대는 지난 시즌 3위 비야레알입니다
후반 12분, 벤치에서 그라운드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는 8월 19일 밤(현지시간), 한국시간으로 20일 새벽에 홈구장 메트로폴리타노에서 말라가를 상대로 2026-27시즌 라리가 개막전을 치렀습니다. 결과는 2-0 승리였습니다. 이 승리의 물꼬를 튼 사람이 이강인이었습니다.
이강인은 선발 명단에 없었습니다. 북중미월드컵을 마친 뒤 병역 관련 서류 문제로 출국이 늦어지면서, 한국에서 개인 훈련으로 몸을 만들어야 했던 탓입니다. 디에고 시메오네 감독은 월드컵에 다녀온 선수들의 컨디션을 관리하는 차원에서 이강인을 벤치에 앉혔습니다.
전반전은 답답했습니다. 말라가가 촘촘한 수비로 버텼고, 아틀레티코는 좀처럼 골문을 열지 못했습니다. 시메오네 감독은 후반 12분(경기 시계로 57분) 알렉스 바에나, 줄리아노 시메오네와 함께 이강인을 투입하며 승부수를 던졌습니다. 그리고 13분 뒤, 다비드 한츠코의 패스를 받은 이강인은 페널티아크 부근에서 수비수 여러 명을 드리블로 벗겨낸 뒤 왼발로 감아 찬 슈팅을 골문 구석에 꽂았습니다. 아틀레티코 공식 데뷔전 첫 골이었습니다.
경기 막판에는 알렉스 바에나가 얻어낸 프리킥을 직접 슈팅으로 마무리하며 2-0을 만들었습니다. 스페인 매체 마르카는 이날 양 팀을 통틀어 가장 높은 평점을 이강인에게 주며 그를 경기 최우수 선수로 꼽았고, "아틀레티코가 새로운 영웅을 발견했다"고 적었습니다.
여기서 짚고 갈 게 하나 있습니다. 데뷔골이 터진 그 순간, 아틀레티코 팬들이 운영하는 스페인 현지 유튜브 채널에서 한 출연자가 두 손가락으로 눈을 옆으로 잡아당기는 동작을 했습니다. 동아시아인을 조롱할 때 쓰이는 동작입니다. 본인은 축하하려던 것이었을 수 있고 의미를 몰랐을 수도 있지만, 행동의 성격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불과 몇 달 전 북중미월드컵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져 FIFA가 사과했던 터라, 골을 기뻐하는 자리에서 또 나왔다는 점이 더 씁쓸합니다.
7번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강인이 이번 시즌 달게 된 등번호는 7번입니다. 아틀레티코를 떠난 앙투안 그리즈만이 오랫동안 달았던 번호입니다. 자연스럽게 이강인을 그리즈만의 후계자로 보는 시선이 스페인 현지에서 생겼습니다.
이강인은 이 평가에 선을 그었습니다. 스페인 매체 아스와 인터뷰에서 그는 "내가 그리즈만의 대체자라기보다는 그리즈만에게 감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즈만은 대체할 수 없는 선수였다"고 말했습니다. 골에 대해서도 "골을 넣어서 기뻤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팀의 승리였다"며 개인 성과보다 팀 승리를 앞세웠습니다. 자기 몸 상태에 대해서도 "아직 리듬이 부족하다"고 스스로 인정했습니다.
득점 장면 뒤에는 감독의 지시도 있었습니다. 이강인은 "경기에 들어가기 전에 감독님이 라인 사이에 공간이 많다고 말씀하셨고, 공을 받으면 슈팅을 시도하라고 했다"고 전했습니다. 그 조언은 그대로 결승골이 됐습니다.
기록으로도 이 골은 특별했습니다. 21세기 아틀레티코에 입단한 외국인 선수 가운데, 이강인(25세 181일)은 데뷔전에서 득점한 최연소 3위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세르히오 아구에로, 다비드 비야, 루이스 수아레스 같은 이름들도 데뷔전에서 곧바로 골을 넣었던 선수들입니다. 구단 레전드 키코 나르바에스는 현지 매체 '카데나 세르'와의 인터뷰에서 이강인의 득점을 이날 가장 마음에 드는 골로 꼽으며 "나는 한국인 선수에게 더 많은 믿음을 갖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다만 스페인 일간지 엘 파이스는 찬사에 조건을 하나 붙였습니다. 그의 어깨에 "그리즈만을 잊게 만들어야 할" 책임이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칭찬처럼 들리지만, 뒤집으면 기대치가 그만큼 높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같은 날, 다른 기사가 나왔습니다
아스는 같은 날 전혀 다른 각도의 기사도 내놓았습니다. 레알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그리고 아틀레티코 같은 라리가 빅클럽은 선수를 영입하는 만큼 내보내는 결정도 빠르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 기사가 예로 든 이름에는 로드리, 디오망데와 함께 이강인도 있었습니다.
근거로 든 사례들은 구체적이었습니다. 지난 시즌 영입됐던 자코모 라스파도리, 티아고 알마다, 마테오 루제리는 이미 아틀레티코를 떠났고, 코너 갤러거도 오래 자리 잡지 못했습니다. 2023년 여름 합류한 찰라르 쇠윈쥐는 불과 반년 만에 페네르바체로 이적했습니다. 매체는 이런 사례를 두고 "활약하거나, 떠나거나. 중간은 없다"고 정리했습니다.
물론 이강인만을 겨냥한 경고는 아닙니다. 이번 여름 라리가에 새로 입성한 선수 전반을 놓고 빅클럽의 운영 방식을 짚은 기사입니다. 하지만 그 명단에 이름이 들어갔다는 사실은, 데뷔골 하나로 안심할 단계는 아니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강인의 다음 상대는 비야레알입니다. 지난 시즌 라리가 3위 팀이고, 시즌 최종전에서 아틀레티코를 5-1로 꺾어 3위 자리를 가져간 팀입니다. 이번 시즌 감독도 이니고 페레스로 바뀌었습니다. 이 경기에서 이강인이 선발로 나서는지, 나선다면 몇 분을 뛰는지가 데뷔골보다 더 정확한 신호입니다. 교체 카드로 13분 만에 골을 넣는 것과, 90분을 책임지는 자리를 얻는 것은 다른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참고
- 연합뉴스, 연합뉴스TV, 머니투데이, 조선비즈, 인터풋볼, 포포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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