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오후 2시, 전국에서 민방위훈련 사이렌이 울렸습니다.
이 시간 도로 위에 있던 운전자 중 일부는 차를 세워야 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차로에서는 그 자리에 서 있으면 됐고, 어떤 차로에서는 옆으로 비켜야 했습니다. 왜 다를까요.
3줄 요약
1. 길 터주기는 차로 수에 따라 요령이 다릅니다
2. 편도 1차로는 우측 정차, 2차로 이상은 중앙 비우기
3. 가까운 대피소는 지도 앱에서 미리 확인해두세요
차로 하나면 우측, 둘 이상이면 가운데를 비웁니다
행정안전부가 안내한 길 터주기 요령은 생각보다 단순합니다. 다만 조건이 하나 붙습니다. 사이렌이 울렸다고 도로 위 모든 차가 멈추는 것이 아니라, 운전 중 소방차나 구급차 같은 긴급차량이 접근할 때 하는 행동입니다. 그때 편도 1차로라면 도로 우측 가장자리에 일시 정지하면 됩니다. 편도 2차로 이상이라면 차량을 좌우 차로로 옮겨 도로 가운데 공간을 비워야 합니다.
차로가 하나뿐이면 옆으로 빠질 자리가 없으니 우측에 붙어 서고, 차로가 여러 개면 가운데를 열어 긴급차량이 곧장 지나갈 수 있게 하는 방식입니다. 규칙이 갈리는 이유는 결국 하나입니다. 긴급차량이 지나갈 공간을 어떻게든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고, 차로 수에 따라 그 공간을 만드는 방법이 다를 뿐입니다.
이번 훈련에서는 이 요령을 실제 도로에서 확인하는 자리도 있었습니다. 서울 세종대로 사거리에서 숭례문 교차로까지는 오후 2시부터 5분간 차량 통제가 이뤄졌고, 이 구간을 지나던 차량은 경찰 지시에 따라 도로 우측에 정차했습니다. 우회도로는 내비게이션 안내를 따르면 됐습니다. 긴급차량 길 터주기 훈련은 전국 250개 구간에서 진행됐습니다. 그러니까 훈련 시간에 도로에 있었더라도, 이 구간에 들어서지 않았다면 평소처럼 주행하면 됐습니다. 헷갈렸던 이유는 대개 여기에 있습니다.
김광용 행정안전부 재난안전관리본부장은 kyongbuk.co.kr 보도에 따르면 "소방차와 구급차 길 터주기 문화가 일상에 정착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참여와 협조를 부탁드린다"고 말했습니다. 훈련 때만 지키고 마는 절차가 아니라, 평소 운전 습관으로 굳어지길 바란다는 뜻으로 읽힙니다. 실제로 길 터주기는 훈련용 규칙이 아니라 도로에서 늘 지켜야 하는 요령입니다.
대피소는 이미 전국 1만7천여 곳에 정해져 있습니다
훈련은 공습경보(오후 2시)와 경계경보(2시15분), 경보해제(2시20분) 순으로 20분간 진행됐습니다. 공습경보 사이렌이 울리면 가까운 민방위 대피소나 지하공간으로 이동하고, 경계경보가 뜨면 대피소를 나와 이동할 수 있되 아직 경계 태세는 유지해야 합니다.
문제는 "가까운 대피소"가 어디인지 평소에 알아두지 않으면 정작 필요할 때 헤매게 된다는 점입니다. 민방위 대피소는 아파트 지하주차장과 지하철역, 지하상가 등 전국 1만7천여 곳에 이미 지정돼 있습니다. 네이버지도, 카카오맵, 티맵, 안전디딤돌 앱에서 위치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외국인은 영어·중국어·일본어·베트남어 등 22개 언어를 지원하는 '이머전시 레디 앱(Emergency Ready App)'을 쓰면 됩니다. 집과 직장 근처 한 곳씩만 미리 찍어두면, 다음에 사이렌이 울릴 때 검색하느라 시간을 쓰지 않아도 됩니다.
병원과 지하철, 철도, 항공기, 선박 등 주요 시설은 훈련 중에도 평소처럼 정상 운영됐습니다. 이런 곳에 있었다면 시설 안내방송과 직원 안내를 따르는 것이 먼저입니다. 승객과 환자가 한꺼번에 밖으로 나가 대피소를 찾는 것보다, 그 자리에서 지침을 받는 편이 안전한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대피 다음에 배우는 것 — 응급처치와 화생방
민방위훈련을 사이렌과 대피만으로 기억하는 분이 많습니다. 그런데 실제 훈련 현장에서는 대피가 끝난 뒤가 더 깁니다. 새한일보 보도에 따르면 경기도는 훈련 종료 후 응급처치와 화생방 상황 대비 행동요령 교육을 함께 진행했습니다. 지하로 내려가는 것까지가 훈련이 아니라, 내려간 다음 무엇을 할 수 있느냐까지가 훈련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이 훈련이 전국 단위로 같은 시각에 굴러갔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경기도에서만 31개 시군 2,799개 대피소에 민방위대장·대원 6,056명과 자원봉사자 893명이 배치돼 주민 대피 유도와 이동 통제를 맡았고, 도내 36개 주요도로 구간에서 길 터주기 훈련이 이뤄졌습니다. 데일리대구경북뉴스 보도에 따르면 고령군은 대가야문화누리와 고령교육지원청 등을 대피시설로 정하고, 경찰·소방과 합동으로 대가야읍 헌문교차로부터 광장사거리 구간을 통제했습니다.
같은 매뉴얼이 이렇게 넓은 범위에서 동시에 작동했다는 사실 자체가, 사이렌을 낯설게 듣지 않아도 되는 근거가 됩니다. 길 위에 있었다면 긴급차량이 오는지 보고 차로 수를 세면 되고, 실내에 있었다면 지도 앱을 한 번 열어보면 됩니다. 정작 어려운 건 규칙을 외우는 일이 아니라, 사이렌이 울린 그 순간에 규칙을 떠올리는 일입니다.
참고
- 새한일보, 데일리대구경북뉴스, KBS 뉴스, 농민신문, kyongbu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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