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개 나라가 같은 날 같은 문장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핵무기를 실을 수 있는 미사일을 쏠 거면, 최소 하루 전에는 주변 나라에 알려 달라는 요구였습니다.
그런데 이 요구가 겨냥한 나라는 두 시간 전에야 알렸습니다. 왜 하필 24시간일까요.
3줄 요약
1. 잠수함에서 쏘는 미사일도 통보 대상입니다
2. 41개국은 24시간, 중국은 2시간 전 통보였습니다
3. 중국은 이 규범에 가입한 적이 없습니다
하루 전에 뭘 알려야 하나
미국 국무부가 지난 8월 11일(현지시간) 한국·미국·일본·영국·프랑스·독일·호주를 포함한 41개국 정부 명의로 공동성명을 냈습니다. 대상은 세 가지입니다. 대륙 하나를 건너 날아가는 장거리 미사일(ICBM), 잠수함에서 물속으로 쏘아 올리는 미사일(SLBM), 그리고 위성을 궤도에 올리는 우주발사체(SLV).
이 셋 중 하나를 쏘려는 나라는 최소 24시간 전에, 영향을 받을 수 있는 나라들에 알려야 한다는 게 성명의 요구입니다.
알릴 내용도 정해 뒀습니다.
| 알릴 것 | 내용 |
|---|---|
| 무엇을 | 미사일·발사체의 대략적인 종류 |
| 언제·어디서 | 발사 예정 시간대와 발사 지역 |
| 어디로 | 예정된 비행 방향 |
여기에 더해, 미사일이 떨어질 것으로 보이는 바다와 하늘길을 지나는 항공기와 선박에도 따로 경고를 줘야 한다고 못 박았습니다. 이 대목이 24시간이라는 숫자의 실제 용도를 말해 줍니다. 하루면 여객기 항로를 틀고, 조업 중인 배를 빼고, 레이더에 잡힌 물체가 공격인지 시험인지 판단할 시간이 생깁니다. 반대로 두 시간은 그 어느 것도 하기 어려운 시간입니다.
그래서 성명은 이렇게 적었습니다. 충분한 통보 없이 핵무기를 실을 수 있는 미사일을 시험하는 것은 "오판의 위험을 높이고 세계의 안정과 안보를 훼손한다"고요.
이런 사전 통보 약속은 새로 만들어진 게 아닙니다. 헤이그 행동규범(HCOC)이라는 이름으로 이미 145개국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법으로 강제하는 조약이 아니라, 서로 놀라지 말자고 맺은 정치적 약속에 가깝습니다. 한국은 들어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 성명이 사실상 겨냥한 나라와, 한국 입장에서 미사일을 가장 자주 쏘는 이웃은 둘 다 빠져 있습니다. 중국과 북한입니다.
2시간과 "정치적 조작"
성명은 어느 나라도 이름으로 부르지 않았습니다. 다만 "최근 태평양 지역에서 이뤄진 미사일 시험은 대부분의 국가가 채택한 표준적인 관행을 따르지 않았다"고 적었습니다. 가리키는 곳은 분명합니다. 지난 7월 6일 중국이 태평양 해역을 향해 쏜 SLBM 시험발사입니다. 중국 매체들은 이 미사일을 미국 전역을 사정권에 두는 '쥐랑(JL)-3'이라고 보도했지만, 공식 제원은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같은 날 스위스 제네바의 유엔 군축회의에서는 더 직접적인 말이 오갔습니다. 미국은 "중국이 영향을 받을 수 있는 모든 나라에 통보하지 않았고, 통보한 경우에도 2시간 전이 돼서야 이뤄졌다"며 "혼란스럽고 도발적인 방식"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중국 측 반박은 두 갈래입니다. 리치장 제네바 주재 유엔 부대표는 같은 회의에서 "중국은 미국을 비롯한 다른 국가들에 사전에 통보했고, 어느 나라의 이익에도 피해가 가지 않도록 신중한 조치를 취했다"고 맞섰습니다. 이튿날 신화통신을 통해서는 리츠창 군축사무대사가 "선의의 조치에 트집을 잡고 근거 없이 비난한다"며 "전형적인 정치적 조작이자 노골적인 이중잣대"라고 했습니다. 중국은 HCOC 회원국이 아니니 그 규범에 구속될 이유가 없다는 것, 그리고 "ICBM 시험발사를 지금까지 단 세 차례만 했고 핵보유 5개국 중 가장 적다"는 것이 근거였습니다.
양쪽 말이 정면으로 부딪히는 지점은 사실 하나뿐입니다. 통보를 했느냐가 아니라, 언제 했느냐입니다. 중국은 통보했다고 하고, 미국은 두 시간 전이면 안 한 것과 다르지 않다고 합니다. 24시간이라는 숫자가 성명에 굳이 박힌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기준선이 없으면 "알리긴 알렸다"는 말로 끝나 버립니다.
구속력이 없는데 왜 41개국이나
이 성명에는 강제력이 없습니다. HCOC 자체가 자율적인 약속이고, 중국은 가입국도 아닙니다. 어기면 받는 처벌 같은 것은 없습니다.
그런데도 41개국이 굳이 이름을 올린 이유는 있습니다. 다음 달로 예정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미를 앞두고 미중 신경전이 군축 무대로도 번지는 국면이라, 숫자를 문서로 남겨 두는 일 자체가 협상 카드가 됩니다. 이름을 올린 나라들이 대부분 미국의 동맹이거나 가까운 우방이라는 점에서, 이번 요구는 군사적 제재보다 외교적 압박에 가깝습니다.
한국이 참여한 배경도 여기서 갈라져 나옵니다. 북한 역시 ICBM과 SLBM을 계속 개발해 왔고, 우주발사체 발사도 이어 왔습니다. 성명이 특정 국가가 아니라 '모든 국가'를 대상으로 쓰인 이상 북한도 그 안에 들어갑니다. 한미일은 북한이 미사일을 쏠 때마다 외교당국끼리 정보와 상황 평가를 신속히 공유하는 채널을 따로 돌리고 있고, 지난 8월 6일 발사 때도 외교부 한반도정책국장과 미국·일본 담당자가 이튿날 유선으로 상황을 맞춰 봤습니다.
이번 공방에서 눈여겨볼 만한 건 승패가 아니라 기준선입니다. 24시간은 지금 아무도 강제할 수 없지만, 국제사회가 반복해서 들이밀수록 "이 정도는 하는 게 보통"이라는 선이 됩니다. 다음에 태평양 어딘가에서 미사일이 날아갈 때, 통보가 몇 시간 전에 왔는지가 뉴스에 적히는지 확인해 보시면 됩니다. 그 숫자가 24에 가까워지는지 아닌지가 이 문서의 성적표입니다.
참고
- 뉴스1, KBS 뉴스, 경향신문
태그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SLBM #탄도미사일 #ICBM #중국미사일 #미중갈등 #헤이그행동규범 #HCOC #유엔군축회의 #쥐랑미사일 #군축 #북한미사일 #시진핑방미 #국제안보 #사전통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