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부처 하나가 북한을 부르는 이름을 바꾸자고 제안했습니다.
대통령은 그 자리에서 신중하자고 했습니다.
이름 하나에 왜 이런 주고받음이 생길까요.
3줄 요약
1. 통일부가 북한 호칭을 '조선'으로 바꾸자고 제안했습니다.
2. 우리 법은 북한을 국가가 아닌 특수관계로 규정합니다.
3. 바뀐 것은 없습니다. 공론화하자는 단계입니다.
8월 5일에 있었던 일
통일부가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북한 호칭을 공식 국호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약칭 조선)으로 바꾸는 방안을 공론화하자고 제안했습니다.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주적' 같은 대결 조장 용어도 대체해야 한다고 했고, 10년간 멈춰 있던 경원선 남측 구간(백마고지~월정리) 복원을 내년 중 재개해 2029년까지 마치겠다는 계획도 함께 보고했습니다.
대통령은 같은 자리에서 논쟁의 여지가 있으니 신중하자는 취지로 답했습니다.
여기까지가 확인된 사실입니다. 어느 쪽이 옳으냐는 이 글에서 다루지 않습니다. 대신 호칭이라는 것이 우리 법체계에서 어디에 걸려 있는지를 봅니다. 그걸 알면 이 제안이 무엇을 건드리는 제안인지가 보입니다.
헌법은 북한 땅을 우리 영토로 적어 뒀습니다
출발점은 헌법 제3조입니다.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
문장 그대로 읽으면 휴전선 위쪽도 대한민국 영토입니다. 북한을 별개의 국가로 보지 않는다는 뜻이 이 한 줄에서 나옵니다. 국가보안법이 북한을 국가가 아니라 '반국가단체'로 다루는 구조도 이 조항 위에 서 있습니다.
그런데 1991년에 문장이 하나 더 생겼습니다
1991년 12월 13일 남북기본합의서가 서명됩니다. 그 전문에 이런 표현이 들어갑니다. 남북 관계는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니라,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라고.
합의서는 조약이 아니어서 그 자체로 법적 구속력을 갖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2005년에 만들어진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이 이 문장을 아예 조문으로 옮겨 놓습니다. 제3조입니다.
법이 여기서 두 가지를 못 박습니다. 남북 관계는 국가 간 관계가 아닌 특수관계이고, 남북 사이의 거래는 국가 간 거래가 아닌 민족 내부의 거래라고.
그래서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은 물건이 오가는 것을 수출·수입이라고 하지 않고 반출·반입이라고 부릅니다. 용어 하나 다른 게 아니라, 국가 간 무역에 붙는 절차를 그대로 적용하지 않겠다는 설계입니다.
반국가단체이면서 동시에 대화 상대
두 조항이 서로 다른 방향을 가리키니 법원이 정리를 해야 했습니다.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이 오랫동안 유지해 온 결론은 북한이 두 가지 지위를 동시에 갖는다는 것입니다. 한쪽에서는 반국가단체이고, 다른 쪽에서는 통일을 위한 대화와 협력의 동반자입니다. 어느 하나를 버리지 않았습니다.
모순처럼 들리는데, 현실이 그렇게 생겼습니다. 같은 상대와 총구를 겨누면서 회담을 합니다. 법이 그 두 가지를 한꺼번에 담으려니 이런 모양이 됐습니다.
호칭 문제가 간단하지 않은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무엇이라 부르느냐는 이 두 지위 중 어느 쪽을 앞에 놓느냐로 읽히기 때문입니다.
'주적'은 법에 있는 말이 아닙니다
이건 짚고 넘어갈 만합니다. '주적'은 법률 용어가 아닙니다. 국방부가 2년마다 내는 국방백서라는 문서의 서술입니다.
들고 난 이력이 있습니다. 1995년 국방백서에 처음 들어갔고, 2004년 백서에서 '직접적 군사위협'이라는 표현으로 바뀌었습니다. 2010년 천안함과 연평도 이후 '북한 정권과 북한군은 적'이라는 문장으로 다시 들어갔다가, 2018년과 2020년 백서에서 빠졌고, 2022년 백서에서 6년 만에 되살아났습니다.
법을 고친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문서의 문장이 바뀐 것입니다. 정부가 표현을 바꾸겠다고 할 때 국회를 거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이런 것들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정부 몫이고 무엇이 국회 몫인가
여기가 이번 제안을 읽는 실전 지점입니다. 표현은 층이 두 개입니다.
정부가 만드는 문서 — 백서, 보도자료, 업무보고, 부처 홈페이지 — 의 표현은 정부가 정합니다. 반면 법률 조문에 박혀 있는 표현은 국회가 법을 고쳐야 바뀝니다. '북한'이라는 말은 법률 이름에까지 들어가 있습니다.
그러니 "호칭을 바꾸겠다"는 말이 나왔을 때 확인할 것은 하나입니다. 어느 층을 말하는가. 이번 보고는 공론화를 하자는 제안이었고, 법을 고치겠다는 안건이 국회에 올라간 단계가 아닙니다.
제가 눈여겨보는 건 호칭이 아니라 '특수관계' 네 글자가 그대로 남는가입니다. 부르는 이름이 무엇으로 정해지든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 제3조가 그대로 있으면 북한의 법적 지위는 달라지지 않습니다. 반대로 그 조문이 손질된다면 그때는 호칭보다 훨씬 큰 변화입니다.
뉴스 제목만 보면 이름 싸움처럼 보입니다. 실제로 움직이는 것은 조문입니다.
확인할 곳은 기사가 아니라 국가법령정보센터입니다.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을 검색하면 제3조 원문이 그대로 나옵니다. 열 줄이 안 됩니다.
참고자료
- 연합뉴스 정동영 "혐오·대결조장 '주적'용어 대체해야…경원선 복원재개"
- 아시아경제 정동영 "北 대신 조선·주적 용어 대체"…李 "논쟁 여지 있어"
- 국가법령정보센터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 제3조
- 국가기록원 남북기본합의서
- 경향신문 윤 정부 첫 국방백서에 '북한은 적'…6년 만에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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