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오디세이'가 극장가를 휩쓸고 있습니다.
그런데 같은 시기 조용히 움직인 쪽은 서점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책을 산 사람들의 나이대가 예상과 달랐습니다.
3줄 요약
1. 오디세이 관련 도서 판매가 1년 새 7배 늘었습니다
2. 구매자는 30~50대가 71.4%, 20대는 15.4%였습니다
3. 완역본은 24권짜리라 입문서부터 골라도 됩니다
595.5퍼센트, 그런데 6배가 아니라 7배입니다
먼저 숫자 하나만 짚고 갑니다. 교보문고 집계로 지난 7월 제목에 '오디세이', '오디세이아', '오뒷세이아'가 들어간 도서 판매량은 1년 전 같은 달보다 595.5퍼센트 늘었습니다.
이 숫자를 "약 6배"로 옮긴 기사가 많은데, 증가율 595.5퍼센트는 원래의 약 7배를 뜻합니다. 100이 695.5가 된 것이지 595.5가 된 게 아닙니다. 사소해 보이지만 이런 표기 차이는 뉴스에서 꽤 자주 반복됩니다.
하나 더. 이 수치는 호메로스 원전 한 권의 판매량이 아니라 제목에 그 단어가 들어간 책 전체의 합계입니다. 완역본, 입문서, 어린이·청소년판, 전자책이 모두 들어갑니다. 영화는 8월 5일 개봉했는데 판매가 뛴 건 7월, 즉 개봉 전이었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영화 자체의 성적은 이렇습니다. 8월 20일까지 누적 관객 578만 명, 개봉 이후 16일 연속 예매율 1위. 4주 차 예매가 열렸을 때 CGV 대기 인원이 4만 명을 넘어 앱 접속이 지연되기도 했습니다. 이 영화는 전 분량을 IMAX 필름 카메라로 촬영한 첫 사례로도 기록됐습니다.
40대 25.7퍼센트, 20대 15.4퍼센트
이번 흐름에서 제일 눈여겨볼 만한 건 판매량이 아니라 누가 샀는가입니다.
| 연령 | 비중 |
|---|---|
| 40대 | 25.7% |
| 50대 | 23.6% |
| 30대 | 22.1% |
| 20대 | 15.4% |
30~50대를 합치면 71.4퍼센트입니다. 20대는 넷 중 하나에도 못 미쳤습니다. 영화 관객층이 젊다는 통념을 생각하면 뒤집힌 그림입니다.
책이 팔린 방식도 단순하지 않습니다. 세계일보 보도에 따르면 교보문고에서 올해 가장 많이 팔린 관련 도서는 현대지성의 '오디세이아(고대 그리스어 완역본)'였습니다. 줄거리만 확인하려는 사람이 고를 책은 아닙니다. 8월 둘째 주 교보문고와 예스24 종합 베스트셀러에서 원작 관련 도서는 나란히 2위에 올랐습니다.
독서 앱 밀리의 서재에서도 개봉 뒤 '오디세이' 일평균 검색량이 3.3배, '그리스 로마 신화'가 3.6배로 뛰었습니다. 관심이 원작 한 권에 머물지 않고 신화 전반으로 번졌다는 뜻입니다.
사기 전에 알아둘 것: 24권짜리 서사시입니다
여기서 실용적인 이야기를 하나 하겠습니다. 베스트셀러 순위를 보고 완역본을 집었다가 책장에 꽂아둔 채로 끝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오디세이아'는 24권으로 나뉜 장편 서사시입니다. 낯선 신과 영웅, 섬과 도시 이름이 쉴 새 없이 나옵니다. 제목은 누구나 알지만 끝까지 읽은 사람은 많지 않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그러니 순서를 뒤집어도 괜찮습니다. 쉽게 풀어 쓴 입문서나 청소년판으로 인물 관계를 먼저 익히고 완역본으로 넘어가는 방식, 혹은 하루에 한 권씩 스무나흘에 나눠 읽는 방식이 있습니다. 실제로 CGV는 8월 10일 씨네드쉐프 용산에서 원작을 함께 읽는 북클럽을 열어 참가자 전원에게 책을 나눠줬고, 출판사 북도슨트는 8월 18일부터 30일 동안 각자 마음에 남은 문장을 골라 옮겨 적는 필사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8월 16일 뉴욕 타임스스퀘어 전광판에도 소개됐습니다.
책 말고 다른 길도 있습니다. 국립인천해양박물관은 8월 11일부터 12월 6일까지 고대 그리스를 다루는 특별 전시 '그리스, 바다가 빚은 위대한 문명'을 엽니다. 호메로스 두상과 아가멤논 관련 전시물이 나옵니다. 놀런 감독의 영화 공식 각본집도 8월 19일 국내에 나왔습니다.
왜 하필 30~50대인가
숫자가 던지는 질문은 결국 이겁니다. 왜 이 세대일까요.
이태우 영남대 연구교수는 한 인터뷰에서 "30~50세대가 고전을 다시 찾는 것은 과거에 대한 향수라기보다 급변하는 시대에 변하지 않는 인간과 삶의 기준을 확인하려는 욕구로 볼 수 있다"고 짚었습니다. 아날로그 교육을 받고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지나 다시 AI 앞에 선 세대입니다.
'오디세이아'는 오디세우스가 고비마다 선택 앞에 서는 이야기입니다. 힘으로 맞설 것인가, 지혜로 벗어날 것인가. 눈앞의 유혹을 좇을 것인가, 돌아가야 할 곳을 향할 것인가. 생성형 AI가 검색과 글쓰기, 번역, 이미지 제작까지 대신하는 지금, AI가 대신 답해주지 못하는 질문은 무엇이 옳은가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쪽에 남아 있습니다.
AI는 빠르게 답을 줍니다. 고전은 쉽게 답할 수 없는 질문을 남깁니다. 578만이라는 관객 수보다, 그중 얼마가 3천 년 전 책을 펼쳤는지가 더 오래 갈 이야기일지 모릅니다.
참고
- 세계일보, 경북매일, 머니투데이, 스타뉴스, 오마이뉴스, 톱스타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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