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동물원에서 판다 우리를 지나 한참 더 안으로 들어가면 근대식 건물 한 채가 나옵니다.
1921년, 이 건물에 무장 독립운동 단체 대표들이 모여 두 달 넘게 노선을 놓고 다퉜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건물 어디에도 그 사실을 알리는 안내문은 없습니다.
광복 81주년, 국내 곳곳은 기념행사로 북적였습니다. 사적지가 실제로 남아 있는 쪽은 왜 이렇게 조용할까요.
3줄 요약
1. 베이징 독립운동 사적지 창관루엔 안내문이 없습니다
2. 베이징에만 26곳, 중국 전담 인력은 0명입니다
3. 필요한 건 새 발굴보다 있는 곳 지키기입니다
판다 우리를 지나 한참 들어가야 나오는 건물
이 건물의 이름은 창관루입니다. 1921년 중국 각지에서 활동하던 무장독립단체 대표 10곳이 이곳에 모였습니다. 두 달 넘게 이어진 회의에서 이들이 다툰 것은 하나였습니다. 독립을 외교로 얻을 것인가, 전쟁으로 얻을 것인가.
1921년이라는 시점이 중요합니다. 3·1운동의 열기가 가라앉고 임시정부가 방향을 놓고 흔들리던 때였습니다. 그 흔들림을 어디로 끌고 갈지 정하려고 사람들이 국경을 넘어 모인 곳이 이 건물입니다.
박용만 등이 주도한 '군사통일회의'가 여기서 열렸고, 신채호도 흩어져 있던 무장 운동을 하나로 묶는 데 힘을 보탰습니다. KBS 보도에서 독립기념관 김용진 연구원은 상하이 임시정부가 외교 중심 노선이었다면 베이징은 독립 전쟁을 우선시한 반(反)임정 계열이 활동하던 곳이고 그 상징적인 장소가 창관루라고 설명했습니다. 같은 목표를 놓고 전혀 다른 답을 들고 모인 사람들의 자리였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지금 건물 어디에서도 한국 독립운동과 관련된 설명이나 표지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판다를 보러 온 사람에게는 그냥 낡은 건물 한 채입니다.
26곳 가운데 상당수는 이미 남의 집입니다
독립기념관이 파악한 베이징의 독립운동 사적지는 모두 26곳입니다. 민족시인 이육사가 순국한 곳, 이회영과 신채호가 살던 집, 조선어 예배가 처음 시작된 충원먼탕이 여기 들어갑니다. 상당수는 이미 공동 주거시설로 개조돼 본모습을 잃었습니다.
빨간 문에 한자로 이름이 적힌 평범한 중국 주택 한 채도 그중 하나입니다. 일제강점기에 끝내 희망을 노래했던 시인이 숨을 거둔 자리인데, 지금은 밖에서 보아 알 방법이 없습니다. 민간 연구단체는 베이징에 남은 독립운동 관련 장소가 실제로는 100여 곳에 이를 것으로 봅니다.
간단한 안내문이나 표지석 하나 세우는 일이 왜 그렇게 어려울까요. 재중항일역사기념사업회 신용섭 이사는 KBS 인터뷰에서 "중국 정부의 협조가 필요한데 협조를 끌어내기 어렵고, 대부분 유적지가 사유 생활공간이기 때문에 유적 표시를 해도 사라진다"고 말했습니다. 남의 나라 정부의 승인과 그 집에 사는 사람의 사정, 벽이 두 개입니다. 그리고 중국에 남아 있는 독립운동 사적지 전체를 관리하고 보존할 전담 인력은 지금 한 명도 없습니다.
같은 날, 안동과 포항에서는
같은 광복절, 국내 풍경은 아주 달랐습니다. 안동과 청송, 영양에서는 청년 30여 명이 남자현 지사의 역사공원과 임청각을 도는 1박 2일 탐방을 했고, 김포에서는 지역 독립운동가의 얼굴과 이름을 AI 영상으로 되살린 무대가 경축식에 올랐습니다. 수원에서는 시민들이 모은 성금으로 높이 4m, 길이 50m짜리 '수원 독립운동의 길' 벽화를 제막했습니다.
포항 학삼서원에서는 가족 30여 명이 태극기를 직접 그려 머리에 두르고, 암호를 풀어 군자금을 전달하다 밀정에게 붙잡히는 역할극을 했습니다. 참여한 한 학부모는 "아이가 오늘처럼 세 시간을 집중하는 걸 처음 봤다"고 말했습니다. 기억하는 방법은 이렇게까지 정교해졌습니다. 다만 그 정교함이 닿는 곳은 대부분 국내입니다.
안내판 64개가 세워진 곳, 세워지지 않은 곳
공백을 메우려는 시도가 없지는 않습니다. 포스코인터내셔널은 국가보훈부와 함께 국외 독립운동 사적지에 안내판을 세우는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부식에 강한 컬러 강판으로 만들어 비바람 속에서도 오래 버티는 안내판입니다. 지난해 중국과 몽골, 뉴질랜드의 사적지에 64개를 설치했고, 올해부터 내년 3월까지 멕시코와 미국, 네덜란드에 111개를 설치하거나 교체할 계획입니다.
광복절인 지난 15일에는 멕시코 메리다의 대한인국민회 지방회관에서 현판과 안내판을 새로 달았습니다. 1919년 3·1운동 소식이 전해졌을 때 현지 한인들이 언론과 종교계에 한국의 독립 선언을 알리며 드나들던 공간이고, 지금은 한국이민사박물관으로 쓰입니다. 안내판 한 장이 붙는다는 건 그 자리가 무엇이었는지 지나가는 사람도 알게 된다는 뜻입니다. 반대로 안내판이 없으면, 건물이 멀쩡히 서 있어도 그 자리는 없는 것과 같습니다.
사적지를 새로 찾아내는 일과, 위치를 이미 아는 곳에 표지 한 장을 세우는 일은 서로 다른 일입니다. 앞은 연구가 하고, 뒤는 협상이 합니다. 내년 광복절에 세어 볼 숫자는 행사가 몇 개 열렸는지가 아니라, 표지석이 몇 개 늘었는지일 겁니다.
참고
- KBS 뉴스, 동아일보, 서울신문, 미디어디펜스, 유교신문, 경인신문, 경북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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