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가 출범한 1982년, 백인천 전 감독은 선수 겸 감독으로 뛰며 타율 4할1푼2리를 쳤습니다.
그 뒤로 44년, 이 기록을 넘어선 선수는 아직 없습니다.
그 백인천 전 감독이 지난 15일, 광복절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3줄 요약
1. 백인천 전 감독이 광복절에 별세했습니다
2. 1982년 타율 4할1푼2리, 44년째 유일합니다
3. 야구는 역대 두 번째 KBO장으로 배웅했습니다
역대 두 번째 KBO장
한국야구위원회(KBO)는 15일 백인천 전 감독의 별세 소식을 전하며, 한국 야구 발전에 헌신한 공로를 기려 장례를 KBO장으로 치른다고 밝혔습니다. 발인은 17일 오전 8시였습니다.
KBO장은 흔한 일이 아닙니다. 이용일 전 총재 직무대행에 이어 역대 두 번째입니다. 리그가 45년을 굴러오는 동안 두 번밖에 없었다는 뜻입니다. 한 사람의 기록을 두고 이 정도 예우가 나왔다는 사실 자체가, 그가 남긴 숫자의 무게를 설명합니다.
사인과 나이는 매체마다 다르게 전해졌습니다. 뇌경색 악화라는 보도와 뇌출혈 치료 중이었다는 보도가 함께 나왔고, 향년도 82세·83세·84세로 갈렸습니다. KBO와 일본프로야구(NPB) 공식 프로필은 생년월일을 1943년 11월 27일로 적고 있지만, 다수 보도는 1942년생으로 전했습니다. 정확한 사인과 나이는 아직 하나로 확정되지 않았습니다.
타율 4할1푼2리, 250타수 103안타
1982년은 한국 프로야구가 처음 출범한 해입니다. 백인천 전 감독은 MBC 청룡(현 LG 트윈스)의 감독 겸 선수로 뛰며 71경기에 나서 250타수 103안타, 타율 4할1푼2리를 기록했습니다. 타율뿐 아니라 최다안타, 득점, 출루율, 장타율까지 다섯 부문에서 1위에 올라 타격 5관왕을 차지했습니다. 출루율 4할9푼7리, 장타율 7할4푼. 마흔을 앞둔 나이였습니다.
여기서 눈여겨볼 대목은 4할이라는 숫자가 아니라 250타수입니다. 타수가 적을수록 높은 타율이 나오기 쉽습니다. 4할 타율을 놓고 "경기 수가 적었다"는 말이 따라붙는 이유도 그것입니다. 다만 그 시즌 그는 타율만 높았던 게 아니라 다섯 부문을 동시에 1위로 끝냈습니다. 운 좋은 표본이었다면 나오기 어려운 조합입니다.
이 기록은 지금까지 KBO에서 나온 유일한 4할입니다. 프로야구가 45번째 시즌을 맞은 지금까지, 뒤를 이은 4할 타자는 없습니다.
일본에서 보낸 19년, 209홈런
백인천 전 감독은 중국 장쑤성 우시에서 태어나 경동고 시절부터 포수 겸 강타자로 이름을 알렸습니다. 1961년 농협 야구단에 입단했고, 이듬해인 1962년 일본으로 건너갔습니다. 도에이 플라이어스, 닛폰햄 파이터스, 롯데 오리온스, 긴테쓰 버펄로스 등을 거치며 1981년까지 뛰었습니다. 1975년에는 다이헤이요 클럽 라이온즈(현 세이부 라이온즈) 소속으로 타율 3할1푼9리를 기록해 퍼시픽리그 타격왕에 올랐습니다.
일본 무대에서만 통산 1969경기에 나서 타율 2할7푼8리, 209홈런, 776타점을 남겼습니다. 그러니까 1982년의 4할은 갑자기 튀어나온 숫자가 아닙니다. 1962년 일본 진출부터 1984년까지, 스무 해가 넘게 방망이로 먹고산 사람이 마지막에 남긴 기록이었습니다.
1990년 LG 창단 우승, '혼의 야구'
선수 은퇴 뒤에는 지도자로 더 오래 그라운드에 남았습니다. 1990년 LG 트윈스 감독으로 부임해 창단 첫 우승을 이끌었고, 이 시기 그는 '혼의 야구'라는 말로 자신의 지도 철학을 설명했습니다. 이후 삼성과 롯데 감독을 차례로 맡았습니다.
성격은 끝까지 그대로였습니다. "한국 야구는 아시아는 물론이고 세계에서도 넘버 원이 될 수 있습니다"라고 했고, "아직도 저는 상당히 젊습니다. 제가 볼 땐 아직도 20대라고 생각하고 있다"고도 했습니다.
이승엽의 홈런왕은 여기서 시작됐습니다
1996년부터 2년간 그는 삼성 라이온즈 감독을 맡았습니다. 1995년 삼성에 입단해 있던 이승엽은 이 시기 주전으로 자리 잡았고, 이듬해 3할 타자가 됐습니다. 1997년에는 32홈런을 쳐 홈런왕에 올랐고, 이후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통산 626홈런을 때렸습니다.
머니투데이 보도에 따르면, 이승엽 요미우리 자이언츠 코치는 15일 자신의 SNS에 추모 글을 남겼습니다. 프로 2년차 시절 백 전 감독이 "너는 한국 최고의 선수가 될 수 있다. 일본 프로야구에도 진출해야 한다"고 말했다는 대목이 눈에 띕니다. 이 코치는 자신이 이룰 수 있는 목표를 하나씩 세우는 쪽이었는데, 감독은 더 높은 곳을 보게 했다고 적었습니다. 혹독한 훈련과 강한 질책이 뒤따랐고, 그렇게 꿈꾸던 홈런 타자가 됐다고 했습니다. "지금의 저를 있게 해주신 분"이라는 문장으로 그는 은사를 배웅했습니다.
5개 구장이 함께 멈춘 이유
이재명 대통령도 이날 소셜미디어에 애도의 뜻을 밝혔습니다. "프로야구가 처음 시작된 1982년, 4할1푼2리라는 놀라운 기록을 세우며 한국 프로야구의 역사를 새로 쓰셨다"며 "지금까지도 깨지지 않은 이 기록은 감독님께서 얼마나 뛰어난 선수였는지를 보여준다"고 했습니다.
빈소에는 구광모 LG그룹 회장과 이승엽 코치가 보낸 조화가 놓였고, 야구인들의 조문이 이어졌습니다. 프로야구 5개 구장에서도 경기에 앞서 고인을 추모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기록은 깨지라고 있는 것이지만, 어떤 기록은 깨지지 않는 동안 그 사람의 이름을 대신합니다. 4할은 44년째 혼자입니다. 그 자리가 언제 채워질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참고
- 머니투데이, 중앙일보, 한겨레, 동아일보, 연합뉴스, JTBC, KBS, 경기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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