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지사가 이달 초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경기도 재정이 사실상 부도 상태"라고 선언했습니다.
행정안전부가 집계한 지난해 경기도의 예산 대비 채무 비율은 12.86%, 서울(20.05%)이나 부산(16.26%)보다 낮은 '정상' 등급입니다.
같은 곳간을 두고 정반대 판정이 나온 셈인데, 어느 쪽이 맞는 걸까요.
3줄 요약
1. 추미애 지사가 든 근거는 채무비율이 아닙니다
2. 예산 대비 빚 12.86%, 자산 대비 빚 15.3%
3. 빚 숫자는 '무엇과 비교했나'부터 봐야 합니다
12.86%는 예산과 비교한 숫자입니다
행정안전부는 지방재정법에 따라 광역자치단체마다 예산 대비 채무 비율을 봅니다. 한 해 쓰는 돈에 견줘 빚이 얼마나 되느냐입니다. 25% 이하면 정상, 25%를 넘으면 재정 주의, 40%를 넘으면 재정 위기 단계로 지정합니다.
지난해 경기도는 12.86%였습니다. 전국 광역지자체 평균 14.61%보다 낮습니다. 올해 재정자립도도 54.39%로 서울 다음입니다. 동아일보 보도에 따르면 경기도는 현재 재정 위기 단체 심의 대상에도 들어 있지 않고, 행안부는 "각 지자체의 재정은 아직 주의나 위험 상황은 아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자산 43조3000억, 부채 6조6000억
추 지사가 페이스북에 올린 반박은 비교 대상 자체를 바꿉니다. "개인의 빚을 판단할 때 연봉과 대출금만 비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가진 재산이 얼마인지, 수입이 안정적인지를 함께 본다는 뜻입니다.
2024년 기준 경기도의 자산은 약 43조3000억 원, 부채는 약 6조6000억 원입니다. 자산 대비 부채비율로 따지면 15.3%, 전국 시도 가운데 가장 높습니다. 자산 규모가 서울(약 150조 원)의 3분의 1도 안 되기 때문입니다.
같은 빚인데 예산과 비교하면 양호하고, 재산과 비교하면 전국 최고입니다. 두 숫자 다 맞습니다. 재는 잣대가 다를 뿐입니다.
2년 새 36%, 전국 평균의 세 배
액수보다 속도를 봐야 한다는 것이 도의 주장입니다. 2023년부터 2025년까지 전국 광역지방정부의 채무는 36조7000억 원에서 41조5000억 원으로 12.7% 늘었습니다. 같은 기간 경기도는 4조5000억 원에서 6조1000억 원으로 36.1% 늘었습니다.
집계 시점을 달리 잡으면 숫자도 달라집니다. 동아일보는 경기도 채무가 올해 6월 기준 7조415억 원으로 2022년보다 83% 늘었다고 보도했습니다.
지방세의 절반이 취득세에서 나옵니다
여기가 뇌관입니다. 올해 경기도 지방세 수입의 약 절반이 취득세입니다. 서울은 23.5%, 대전은 21%입니다. 특별시·광역시는 지방소득세, 자동차세처럼 세원이 여럿이라 경기가 좋아지면 세수도 따라 늘지만, 경기도는 부동산 거래가 멈추면 곧바로 세입이 꺾입니다.
실제로 취득세 수입은 2022년 약 11조 원에서 올해 8조1000억 원으로 줄었습니다. 반대로 노인·신생아 관련 복지 예산은 같은 기간 12조2000억 원에서 17조3000억 원으로 늘었습니다. 들어오는 돈은 흔들리고, 나가는 돈은 줄이기 어렵습니다.
빚이 어디서 왔는지도 다툼거리입니다
디지털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2020~2021년 세 차례 지급한 재난기본소득 3조3000억 원이 지금 부채에 포함돼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이 가운데 1조9000억 원은 빌린 돈이었습니다.
국비 매칭도 있습니다. 올해 본예산에서 국비 사업이 전년보다 1조7600억 원 늘면서 여기에 맞춰 내야 하는 도비가 3040억 원 늘었고, 도가 스스로 정하는 사업비는 4조7000억 원에서 3조9000억 원으로 줄었습니다. 전임 지사도 지난해 11월 도의회 답변에서 "국고보조금 매칭이 경기도 재정을 압박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인천은 바다패스를 멈췄습니다
공개적으로 위기를 선언한 곳은 경기도뿐이지만, 사업을 줄이는 곳은 여럿입니다. 인천시는 섬 주민이 아닌 일반 시민에게도 여객선 운임의 70%를 지원하던 '인천 아이 바다패스'를 중단했습니다. 대전시는 제2문화예술복합단지와 제3시립도서관을 재검토하고 있고, 충남도는 178개였던 공약을 101개로 줄였습니다.
7700억 원 감액 추경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습니다
추 지사는 올해 노인 장기요양, 친환경 학교급식, 산후조리비 같은 일부 사업 예산이 9개월분만 편성돼 있어 약 7700억 원 규모의 감액 추경이 필요하다고 설명했습니다. 다만 어떤 사업을 얼마나 깎을지는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도의회 심의가 남아 있습니다.
이번 논쟁에서 제일 눈여겨볼 만한 건 두 숫자가 서로 싸우는 게 아니라 애초에 다른 것을 재고 있다는 점입니다. 다음에 어느 지자체가 "빚이 많다" 혹은 "괜찮다"는 기사를 보면, 그 숫자가 무엇과 비교한 것인지만 확인해도 절반은 읽힙니다. 그리고 내 생활에 닿는 변화는 기자회견이 아니라 추경안에 실릴 사업 목록에서 나옵니다.
참고
- 디지털타임스, 머니투데이,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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