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에 줄지어 선 짧은 기둥들이 있습니다. 차가 인도로 올라오지 못하게 막는 장치입니다.
그런데 저기에 걸려 넘어지거나 정강이를 부딪혀 본 사람이 훨씬 많습니다.
행정안전부가 8월 한 달 동안 이 말뚝을 신고받기로 했습니다.
3줄 요약
1. 볼라드는 높이와 재질이 법에 정해져 있습니다.
2. 높이 80~100cm, 앞 30cm에 점형블록입니다.
3. 돌로 만든 것이 보이면 규격 위반입니다.
이름부터가 "억제용"입니다
법에 적힌 정식 명칭은 자동차 진입억제용 말뚝입니다. 볼라드는 원래 배를 부두에 매어 두는 기둥을 가리키던 말인데, 지금은 이 보도 위 기둥을 부르는 말로 굳었습니다.
이름을 곱씹어 볼 만합니다. 막는(遮斷) 것이 아니라 억제하는 것입니다. 돌진하는 차를 물리적으로 튕겨 내는 방호 시설이 아니라, 여기는 차가 들어오는 곳이 아니라고 알리는 쪽에 가깝습니다.
이 차이가 규격을 정합니다. 법이 볼라드에 요구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사람이 부딪혔을 때 충격을 흡수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도 자체가 사람이 부딪히는 상황을 전제하고 설계돼 있다는 뜻입니다.
숫자가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 시행규칙」에 규격이 나옵니다.
높이는 80~100cm. 성인 허벅지 위쪽입니다. 무릎보다 낮으면 시야에 안 들어와 그냥 걸어 들어가게 됩니다. 낮게 깔린 볼라드가 위험한 건 이 때문입니다.
지름은 10~20cm, 간격은 1.5m 안팎입니다. 간격이 왜 필요한지는 휠체어나 유모차를 밀어 본 사람이 압니다. 차를 막겠다고 촘촘히 세우면 그 보도는 휠체어가 못 지나갑니다. 설치는 보도 유효 폭이 2m 이상인 곳을 기준으로 합니다.
여기까지는 그럭저럭 지켜지는 편입니다. 문제는 다음입니다.
화강암·대리석은 규격 밖입니다
재질 기준은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재료입니다. 우레탄 계열이 대표적입니다. 화강암이나 대리석, 스테인리스처럼 부딪히면 그대로 힘이 사람에게 전달되는 재질은 이 조건을 못 맞춥니다.
그런데 거리에 서 있는 볼라드 중 상당수가 돌입니다. 사각으로 깎은 화강암 기둥이 특히 많습니다. 보기에 단정하고 오래가서 예전에 많이 썼는데, 모서리가 살아 있는 돌덩이라 부딪히면 무릎이 까집니다. 행정안전부가 이번 정비의 첫 번째 대상으로 꼽은 것도 이 석재형입니다.
색과 밝기도 기준에 들어갑니다. 밝은 색상에 반사도료를 써서 밤이나 비 오는 날에도 눈에 띄어야 합니다. 회색 돌기둥은 이쪽도 못 맞춥니다.
30센티미터 앞의 점자블록
시각장애인에게 볼라드는 다른 물건입니다.
그래서 규정은 볼라드 앞 0.3m 이내에 점형블록을 깔도록 하고 있습니다. 흰지팡이가 기둥보다 점자블록을 먼저 만나게 하려는 것입니다. 발밑에서 오돌토돌한 감각이 오면 그 앞에 무언가 서 있다는 신호가 됩니다.
점형블록이 빠진 볼라드는 예고 없이 나타나는 장애물이 됩니다. 그리고 이 부분은 실제 재판에서 다뤄진 적이 있습니다.
규격 위반이 배상 책임으로 이어진 판결이 있습니다
대구고등법원이 2019년 3월 21일 선고한 사건입니다(2018나23163).
시각장애인 한 분이 지하철역 출구 근처 인도에서 볼라드에 걸려 넘어져 척추가 부러졌습니다. 그 볼라드는 대리석이었고, 앞에 점형블록이 없었으며, 반사도료도 쓰이지 않았습니다. 규격 세 가지를 한꺼번에 어긴 셈입니다.
법원은 공공 시설물의 설치·관리에 하자가 있었다고 보고 국가배상법 제5조 제1항에 따라 지방자치단체의 배상 책임을 인정했습니다. 다만 사고 경위에 안내하던 사람의 부주의 등이 겹친 점을 고려해 책임을 60%로 제한했습니다.
제가 이 판결에서 눈여겨보는 건 결론보다 논리 쪽입니다. 시행규칙의 규격이 "이렇게 하면 좋다"는 권고가 아니라, 지키지 않았을 때 책임을 묻는 근거로 쓰였습니다. 거리에 서 있는 돌기둥 하나하나가 그 기준으로 판단받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8월 한 달, 앱으로 받습니다
행정안전부는 8월 4일 전국 지방정부와 함께 기준을 어겼거나 훼손된 볼라드를 전수조사하겠다고 밝혔습니다. 8월 한 달간은 국민 신고를 받아 정비 대상에 반영합니다.
신고는 안전신문고 앱에서 합니다. 앱을 열고 '안전'을 누른 뒤 '유형 선택'으로 들어가 '도로·시설물 파손 및 고장'을 고르면 됩니다. 그다음 위치와 시설 상태를 적어 제출합니다. 사진을 함께 올리면 확인이 빨라집니다.
정비 대상으로 지목된 유형은 다섯 가지입니다. 충격을 흡수하지 못하는 석재형, 높이가 낮아 눈에 안 띄는 것, 간격이 지나치게 좁은 것, 보행로 한가운데 서서 통행을 막는 것, 그리고 훼손돼 철재가 드러났거나 기울어진 것.
행정안전부 안전예방정책실장은 이번 정비가 "차량으로부터 보행자를 보호하는 볼라드 본연의 기능을 살리는 동시에, 보행자의 보행안전도 확보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오늘 지나갈 길에서 확인할 것
돌인가, 아닌가. 이것 하나만 봐도 절반은 걸러집니다.
여기에 두 가지를 더 보면 됩니다. 무릎보다 낮지 않은가, 그리고 기둥 바로 앞 바닥에 점자블록이 깔려 있는가. 세 가지 중 하나라도 어긋나면 신고 대상입니다.
늘 지나다니면서 한 번쯤 부딪혔던 그 기둥이, 알고 보니 규격 밖이었다는 경우가 꽤 있을 겁니다. 이번 달은 그걸 접수하는 창구가 열려 있습니다.
참고자료
- 파이낸셜뉴스 보행자 통행 방해하는 '부적합 볼라드'…"전수 조사해 정비"
- 헤럴드경제 부적합 볼라드 8월 한달 집중신고 받는다
- 국가법령정보센터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 시행규칙
- 국가법령정보센터 대구고법 2018나23163 손해배상(기)
- 에이블뉴스 부적합 설치 볼라드, 또 하나의 보행 걸림돌
- 행정안전부 안전신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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