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통장에 처음 보는 이름으로 20만원이 입금됐습니다.
이상하다 싶어 곧바로 은행과 경찰에 알리고, 안내받은 대로 '오입금 반환' 신청까지 마쳤습니다.
그런데 한 달 뒤, 이 사람이 쓰던 은행과 증권사 계좌에서 이체가 한꺼번에 막혔습니다. 대체 그 20만원은 무엇이었을까요.
3줄 요약
1. 낯선 20만원 입금에 통장 이체가 막힙니다
2. 범죄 연루로 정지된 계좌가 5대 은행 14만9천여건
3. 낯선 돈은 직접 돌려주지 말고 은행에 알리세요
처음 보는 이름으로 들어온 20만원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ㄱ씨(60대)는 지난 6월 초 주거래은행 계좌에 '윤○○'이라는 낯선 이름으로 20만원이 입금된 것을 확인했습니다. 난생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습니다. 곧이어 '불법도박계좌', '큐비236' 같은 이름으로 각각 100원, 200원이 더 들어왔습니다.
ㄱ씨는 이튿날 경찰과 은행 금융사기 콜센터에 알리고 '오입금 반환' 신청을 했습니다. 돈이 한 모바일페이 서비스를 거쳐 들어온 것을 확인하고 그 고객센터에도 물었는데, 돌아온 답이 오히려 불안을 키웠습니다. 상담원이 "윤○○ 연락처를 알려줄 테니 20만원을 직접 돌려주는 게 어떠냐"고 한 겁니다. ㄱ씨는 금융기관을 거치지 않고 직접 돈을 보냈다가 엉뚱한 일에 얽힐 수 있겠다는 생각에 거절했습니다. 이 판단이 나중에 결정적인 차이를 만듭니다.
막힌 것은 계좌가 아니라 이체입니다
한 달여 뒤인 7월 9일, ㄱ씨가 쓰던 증권사 한 곳에서 '전자금융거래가 제한된다'는 메시지가 왔습니다. 시작일 뿐이었습니다. 증권사에서 은행까지, ㄱ씨가 이용 중인 모든 금융 계좌에서 인터넷·모바일뱅킹 이체가 불가능해졌습니다. 계좌가 사라지거나 잔액을 빼앗긴 것은 아니지만, 온라인으로 돈을 옮기는 길이 한꺼번에 닫힌 겁니다. 관세사로 일하며 온라인 뱅킹을 일상적으로 써야 했던 ㄱ씨는 업무에까지 타격을 입었습니다. 이른바 '통장묶기' 피해였습니다.
이 일은 원래 선의로 만든 제도에서 출발합니다. 보이스피싱 범죄 수익을 최대한 붙잡아 피해자에게 돌려주려고, 사기에 쓰인 계좌는 지급을 정지시키는 '사기 이용 계좌 지급정지 제도'가 있습니다. 범죄 조직은 이 장치를 거꾸로 씁니다. 아무 관계 없는 사람의 통장에 범죄 자금 일부를 일부러 넣어, 그 계좌를 정지 상태로 만들어 버리는 겁니다. 지급정지를 풀어주는 대가로 돈을 요구하는 '협박형'이나, 실제 범죄에 쓸 계좌를 미리 물색하는 '미끼형'이 일반적이라고 합니다. 다만 어느 쪽이었는지는 가해자를 붙잡기 전까지 알기 어렵습니다. ㄱ씨 계좌도 윤○○ 명의 계좌와 얽히면서, 그 계좌를 두고 보이스피싱 피해 신고가 들어오자 함께 묶인 것으로 뒤늦게 확인됐습니다.
5대 은행 14만9천여건이라는 숫자
지난 1년(2025년 5월~2026년 5월) 범죄에 연루돼 정지된 계좌는 주요 5대 은행에서만 14만9천여건에 이릅니다. 이 숫자가 전부 통장묶기 피해라는 뜻은 아닙니다. 그 안에 ㄱ씨처럼 애먼 사람이 묶인 사례가 얼마나 되는지는 따로 집계되지 않습니다. 다만 최근에는 시민단체와 노동조합의 후원 계좌까지 같은 피해를 봤습니다. 규모를 정확히 알 수 없다는 게 안심할 이유는 되지 못합니다.
계좌가 묶였다면 이 순서로
ㄱ씨는 은행 고객센터와 경찰, 금융감독원에 수차례 문의하고서야 자신에게 20만원을 보낸 윤○○ 명의 계좌가 보이스피싱 자금이 오가는 '대포통장'이라는 걸 알아냈습니다. 그 뒤 밟은 절차는 이렇습니다.
- 은행 고객센터에 확인 — 어느 계좌 때문에, 어떤 사유로 제한이 걸렸는지부터 묻습니다.
- 경찰에 소명하고 서류 받기 — ㄱ씨는 "범죄에 가담한 혐의 정황이 없다"는 의견이 담긴 사건사고사실확인원을 발급받았습니다.
- 그 서류로 금융회사에 이의 신청 — 금융감독원은 지난 5월부터 이의를 제기하면 금융회사가 5영업일 안에 심의 결과를 통보하도록 절차를 간소화했습니다.
그런데도 ㄱ씨에 대한 제한이 실제로 풀린 건 이의 신청 뒤 10여일이 더 지나서였습니다. 금감원 쪽은 심의 기간 말고도 자료를 내고 보완하는 시간이 있고, 절차를 간소화한 뒤 신청이 몰린 면도 있어 사례마다 걸리는 시간이 다를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제도는 나아졌지만, 묶인 순간부터 완전히 풀릴 때까지는 여전히 시간이 걸린다는 뜻입니다.
낯선 돈이 들어왔을 때 가장 먼저 할 일은 상대에게 직접 돌려주는 게 아니라, 은행과 경찰에 알리고 공식 절차를 밟는 것입니다. ㄱ씨가 모바일페이 상담원의 제안을 따르지 않은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만약 그 20만원을 어딘가로 보냈다면, 자신도 모르게 범죄 자금 세탁에 가담한 모양새가 될 뻔했습니다.
ㄱ씨는 같은 피해를 줄일 방법도 제안했습니다. 통장묶기 피해자가 보이스피싱 피해금을 공탁하면 지급정지를 곧바로 풀어주도록 법과 제도를 보완하자는 겁니다. 이런 제도 변경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습니다.
업무상 금융 지식이 적지 않던 ㄱ씨도 여기서 벗어나는 데 한 달 넘게 걸렸습니다. 통장이 갑자기 묶였다면 당황해서 상대 말을 따르기보다, 서류부터 챙기는 편이 결국 빠릅니다. 내 계좌도 예외가 아닐 수 있습니다.
참고
-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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