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진 스님은 왜 일흔여섯에 바다로 들어갔을까요

2026년 8월 24일 · 한국

22일 오전, 제주 서귀포 앞바다에서 한 스님이 물에 떠 있는 채로 발견됐습니다.

봉은사 주지를 지낸 명진 스님, 향년 76세였습니다. 스님은 일흔을 넘긴 나이에 프리다이빙을 시작했고, 그날 아침도 훈련 중이었습니다.

일흔여섯의 스님은 왜 바다 밑으로 들어갔을까요.

3줄 요약
1. 명진 스님이 프리다이빙 훈련 중 사고를 당했습니다
2. 70대에 시작해 수심 20미터가 목표였습니다
3. 정확한 사고 경위는 아직 조사 중입니다

오전 9시38분, 하예포구 앞바다

22일 오전 9시38분쯤 제주 서귀포시 하예동 하예포구 인근 해상에 사람이 떠 있다는 신고가 들어왔습니다. 출동한 서귀포해양경찰서와 119구급대가 심정지 상태의 남성을 구조해 심폐소생술을 하며 인근 병원으로 옮겼지만, 오전 10시28분 사망 판정이 내려졌습니다. 봉은사 주지를 지낸 명진 스님이었습니다.

구조 당시 스님은 잠수복과 오리발을 착용하고 있었습니다. 해경은 이 장비를 근거로 프리다이빙 연습 도중 사고를 당한 것으로 보고, 인근 CCTV를 분석해 정확한 입수 경위를 조사하고 있습니다. 지인들에 따르면 스님은 이날 오전에도 제주 해상에서 프리다이빙을 했습니다. 사고의 원인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습니다. 주간조선에 따르면 스님의 한 지인은 "스님이 매년 프리다이빙을 하셨다. 오늘 물살이 특별히 거셌었던 건지 모르겠다"며 당혹스러워했습니다.

법구는 서귀포의료원에 안치됐습니다. 조계종과 교구본사인 법주사, 스님이 머물던 제주 남선사가 장례 절차를 논의하고 있지만 발인 등 구체적인 일정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수심 20미터, 3분을 참는 일

명진 스님이 프리다이빙을 시작한 건 70대에 들어서였습니다. 최근 몇 년은 해마다 5월부터 12월까지 제주 남선사에 머물며 훈련을 이어온 것으로 전해집니다. 목표는 수심 20미터였습니다.

경기일보에 따르면 남선사 주지 도정 스님은, 명진 스님이 20미터까지 내려가려면 3분 넘게 숨을 참아야 하는데 그때 밀려오는 두려움을 자주 이야기했다고 전했습니다. 두려움의 근원을 찾아 정면으로 마주하고 넘어서는 일, 그 자체를 수행으로 여겼다는 것입니다. 조계종 선명상위원장 금강 스님도 같은 매체를 통해 약 20일 전 만났을 때 스님이 "무산소 바다 20미터"를 이야기했다며 애도의 뜻을 전했습니다.

사실 바다는 스님에게 오래된 장소였습니다. 주간경향에 따르면 스님은 2001년 인터뷰에서 취미를 묻는 질문에 "낙산사 앞 바다에서 수영하는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2021년 강릉 사천해변 인터뷰에서는 아침마다 바다에서 헤엄친다며, 한 번 들어가면 8킬로미터를 헤엄치고 서너 시간을 물에서 보냈다고 했습니다. 그 무렵 서핑도 새로 배우고 있다고 했습니다. 프리다이빙은 그 오랜 습관이 수행 쪽으로 한 걸음 더 들어간 자리였던 셈입니다.

절 살림을 신도에게 펼쳐 보인 주지

명진 스님은 1950년 충남 당진에서 태어나 열아홉이던 1969년 해인사 백련암에서 출가했습니다. 베트남전에 참전한 이력도 있습니다. 1994년 조계종 종단 개혁을 주도했고 중앙종회 의원과 부의장을 지낸 뒤, 2006년부터 4년간 서울 봉은사 주지를 맡았습니다.

주지 시절 스님은 절의 재정 내역을 신도들에게 공개했고, 절 운영을 정하는 회의에 신도를 참여시켰습니다. 같은 기간 1천 일 동안 하루 세 차례 1천배를 올리는 기도를 이어갔습니다. 밖으로는 자승 당시 총무원장과 이명박 정부를 거침없이 비판했습니다. 이 무렵 국가정보원이 스님의 동향을 파악하고 비판 여론을 만들려 한 사실이 나중에 드러났고, 주간경향에 따르면 스님은 2020년 국가와 조계종을 상대로 10억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냈습니다.

승적을 잃고, 반년 전에 되찾았습니다

봉은사를 총무원이 직접 관리하는 절로 바꾸는 문제를 놓고 갈등이 깊어진 뒤에도 스님은 비판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조계종은 2017년 4월 승가의 존엄과 종단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유로 스님을 제적했습니다. 제적은 승적을 지워 승려 신분 자체를 잃게 하는 가장 무거운 징계입니다.

스님은 이것이 비판하는 사람을 쳐내려는 정치적 징계라며 소송을 냈습니다. 1심과 2심 재판부 모두 스님의 손을 들어줬고, 징계가 절차에서도 내용에서도 정당성을 갖추지 못했다고 판단했습니다. 조계종과 스님 양측이 올해 2월 대법원에 상고하지 않기로 하면서 징계 취소가 확정됐고, 승적도 회복됐습니다. 9년 가까이 이어진 법적 다툼이 끝난 지 반년 만이었습니다.

용산에도, 광화문에도 있던 사람

스님은 용산참사세월호 참사 때 현장을 찾아 유가족을 위로했습니다. 최근에는 제38대 조계종 총무원장 선거를 앞두고 종단 안에서 세력 다툼과 과거사 폭로전이 이어지자, 선거 제도의 폐단을 지적하며 추대 방식으로 바꾸자고 촉구했습니다. 오랜 싸움을 내려놓고 다시 바다로 향했던 여름이었습니다.

참고

  • 서울신문, 매일신문, 주간조선, 아주경제, 경향신문, 채널A, 동아일보, KBS 뉴스, 뉴스핌, 제주의소리, 경기일보, 주간경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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