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세포를 정상 세포로 되돌린다"는 제목이 하루 사이 여러 매체에 올라왔습니다.
출처는 모두 같습니다. KAIST 연구팀이 국제학술지에 낸 논문 한 편입니다.
그런데 이 논문이 답한 질문은 '어떻게 되돌리나'가 아니라 '왜 못 돌아오나'였습니다. 그 차이가 제목에서 통째로 빠졌습니다.
3줄 요약
1. KAIST가 찾은 건 암세포를 가두는 회로입니다
2. 수천 개 되먹임 회로 중 잠금 회로만 짚었습니다
3. 이번 발표에 임상·동물실험 결과는 없습니다
자극이 사라져도 세포는 그대로 남습니다
우리 몸의 세포는 외부 자극을 받으면 성질과 기능을 바꿉니다. 문제는 자극이 사라진 뒤에도 바뀐 상태가 그대로 굳어버리는 경우가 있다는 점입니다. 조광현 교수 연구팀은 이 성질을 비가역성이라고 부릅니다.
비가역성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닙니다. 세포가 특정 기능을 가진 세포로 분화한 뒤 그 상태를 흔들림 없이 유지하는 데 꼭 필요한 성질입니다. 간세포가 어느 날 갑자기 다른 세포로 바뀌지 않는 것도 이 성질 덕분입니다.
문제는 이 성질이 병을 키우는 쪽으로 작동할 때입니다. 암세포가 주변 조직으로 옮겨가고 파고드는 성질을 갖게 되는 상피-간엽 전이가 그런 경우입니다.
세포 안에는 한 분자가 다른 분자를 활성화하고, 그 분자가 다시 처음 분자를 활성화하는 양성 되먹임 회로가 수천 개 넘게 있습니다. 외부 자극이 사라져도 이 회로들이 서로를 계속 깨우면서 바뀐 상태를 붙잡아 둡니다.
수천 개 전선 가운데 문을 잠근 것만
그동안의 벽은 여기 있었습니다. 그 많은 회로 가운데 어느 것이 실제로 세포를 '돌아올 수 없는 상태'로 만드는지 가려내기가 매우 어려웠습니다. 회로 하나를 꺼봤다가 다시 켜보는 식으로는 답이 잘 나오지 않습니다. 서로 얽혀 있어서 한 회로를 건드린 효과가 다른 회로를 타고 되돌아오기 때문입니다.
연구팀이 개발한 기술 이름은 루트(ROOT)입니다. 세포 안 분자들이 주고받는 관계를 컴퓨터 논리 모델로 만들고, 자극이 들어왔다가 사라지는 과정을 통째로 모사합니다. 그 모델 안에서 세포를 바뀐 상태에 붙잡아 두는 핵심 회로 묶음, 이른바 비가역성 커널을 찾아냅니다.
복잡하게 얽힌 수천 개의 전선 가운데 실제로 문을 잠그고 있는 전선만 골라내는 셈입니다.
손잡이가 두 개인 이유
회로를 찾은 다음에는 되돌리는 방법이 두 갈래로 갈립니다. 하나는 리셋 제어입니다. 세포가 비가역적 성질을 유지한 채로 지금 상태만 변하기 전으로 돌립니다. 다른 하나는 역전 제어로, 비가역성을 만드는 원인 자체를 없애 세포가 여러 상태 사이를 오갈 수 있게 만듭니다. 목적에 따라 고를 수 있는 두 개의 손잡이가 생긴 셈입니다.
차이는 무엇을 남기느냐에 있습니다. 앞쪽은 잠금장치를 그대로 둔 채 문만 열고, 뒤쪽은 잠금장치를 떼어냅니다. 발표된 내용은 두 방식이 각각 무엇을 하는지까지입니다.
연구팀은 이 기술을 B세포 분화와 폐암의 상피-간엽 전이, 단일세포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장세포·베타세포 분화 모델에 적용했습니다. 그 결과 기존 연구에서 세포의 운명을 결정짓는다고 알려졌던 인자들과 일치하는 회로를 다시 찾아냈습니다. 이미 알려진 답과 새 방법이 내놓은 답이 맞아떨어졌다는 뜻입니다. 새로 만든 도구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확인하는 방식으로는 표준에 가깝습니다.
이번 발표에 없는 것
이번 연구는 컴퓨터 모델과 기존 실험 데이터를 바탕으로 회로를 찾아내고 제어 방법을 제시한 기초 연구입니다. 이번 발표는 임상시험이나 동물실험 결과를 내놓지 않았습니다.
조광현 교수의 말에서 눈여겨볼 만한 건 마지막 대목입니다. "향후 암과 노화 등에서 비정상적으로 굳어진 세포 상태를 정상으로 되돌리는 새로운 치료전략 개발에 활용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습니다. '치료법을 개발했다'가 아니라 '활용될 것으로 기대한다'입니다.
논문은 국제학술지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에 실렸고, 온라인에 공개된 날짜는 8월 13일입니다. 국내 기사가 한꺼번에 쏟아진 21일은 KAIST가 이 연구를 알린 날입니다. 새 발견이 그날 나온 것이 아니라, 그날 한국어로 정리돼 나왔다는 뜻입니다.
그럼 다음 소식이 나왔을 때 무엇을 보면 될까요. 모델이 지목한 회로를 실제 세포에서 껐을 때 상태가 되돌아가는지, 그 결과가 동물에서도 재현되는지, 되돌아간 세포가 다시 굳지 않고 버티는지입니다. 이 셋 중 어디까지 왔는지만 확인해도 제목과 실제 성과 사이의 거리가 보입니다.
이번에 밝혀진 것은 세포를 가두는 잠금장치의 정체입니다. 사람에게 바로 쓸 수 있는 치료제와는 다른 이야기입니다. 그 둘을 한 문장에 붙여 놓은 것은 논문이 아니라 제목이었습니다.
참고
- 헤럴드경제, KAIST 뉴스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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