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6일, 스위스 알프스 트리프트 빙하를 지나던 등산객이 사람의 유해 두 구를 발견했습니다.
DNA 대조 결과, 1992년 9월 바이스미스 봉우리 부근에서 실종된 39세와 41세 벨기에 국적 남성으로 확인됐습니다.
34년째 얼음 속에 있던 두 사람이 왜 하필 올여름 모습을 드러냈을까요.
3줄 요약
1. 올해 스위스 빙하는 6월 29일에 겨울눈을 다 썼습니다
2. 론 빙하는 한 달 새 두께 4m를 잃었습니다
3. 여름 알프스 산행은 낙석 위험을 먼저 확인해야 합니다
7월 26일, 트리프트 빙하에서 있었던 일
스위스 남부 발레주 경찰에 따르면, 지난달 26일 트리프트 빙하를 지나던 한 등산객이 사람의 유해 두 구를 발견해 신고했습니다. 유해는 시옹에 있는 발레 병원 법의학연구소로 옮겨졌고, DNA 대조를 거쳐 8월 19일 신원이 공개됐습니다.
확인된 사람은 1992년 9월 해발 4,017m 바이스미스 봉우리 정상을 향해 오르던 중 실종된 벨기에 국적 남성 두 명이었습니다. 실종 당시 나이는 각각 39세와 41세. 두 사람은 2,726m 높이의 바이스미스 산장에서 출발해 정상을 거쳐 알마겔러 산장으로 넘어갈 계획이었지만, 산행 도중 날씨가 급격히 나빠지며 끝내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수개월에 걸친 수색에서 나온 건 배낭 하나뿐이었습니다.
그 뒤 34년 동안 두 사람은 얼음 아래 어딘가에 있었고, 빙하가 녹아 뒤로 물러나면서 그 지점이 지표에 드러났습니다. 발레주 경찰은 빙하가 후퇴하면서 수십 년 전 산에서 실종된 사람들의 유해가 발견되는 일이 종종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발레주는 1925년부터 실종자 명단을 관리해 왔는데, 그 오래된 기록과 지금의 빙하 표면이 서로 만나고 있는 셈입니다.
6월 29일에 이미 끝난 겨울눈
두 사람이 하필 올여름 나온 데는 배경이 있습니다. 취리히연방공대 등이 함께 운영하는 스위스 빙하 관측망 GLAMOS에 따르면, 올해 스위스 알프스에 쌓였던 겨울눈은 6월 29일자로 이미 다 녹아 없어졌습니다. 관측 사상 두 번째로 이른 시점이고, 이보다 빨랐던 해는 2022년 하나뿐입니다.
이 날짜에는 이름이 있습니다. 빙하 손실일(Glacier Loss Day). 겨울 동안 새로 쌓인 눈이 전부 사라지고, 그 밑에 있던 오래된 얼음 본체가 깎여 나가기 시작하는 시점입니다. 보통은 여름이 한창일 때쯤 찾아옵니다. 올해는 그보다 두 달 가까이 빨랐습니다.
시점이 당겨지면 뒤가 더 힘들어집니다. 흰 눈은 햇빛을 되쏘아 보내지만, 그 아래 짙은 색 맨얼음이 드러나면 반대로 햇빛을 빨아들여 녹는 속도에 가속이 붙습니다. 녹으니까 얼음이 드러나고, 드러났으니 더 빨리 녹습니다. 겨울 적설량이 적었던 상태에서 6월과 7월의 폭염이 겹치며, 이 되먹임이 예년보다 훨씬 이른 시점부터 돌기 시작한 겁니다.
론 빙하, 한 달 새 4미터
숫자로 보면 체감이 다릅니다. 스위스 남부 론 빙하는 6월 중순 이후 한 달 동안 얼음 두께가 4m 넘게 줄었습니다. 뉴스스페이스 보도에 따르면 하루 평균 10cm 안팎씩 사라진 셈이고, 2주 만에 1.4m가 낮아진 지점도 관측됐습니다. 성인 한 사람 키만 한 얼음이 보름 만에 없어졌다는 뜻입니다.
다만 올여름 숫자 중 제일 눈여겨볼 것은 4m가 아니라 6월 29일이라는 날짜라고 봅니다. 두께는 결과고, 날짜는 그 결과를 만든 조건이기 때문입니다.
10년 사이 4분의 1
올여름만의 일회성 사건도 아닙니다. GLAMOS의 2025년 연례 평가에 따르면 스위스 빙하 전체 부피는 2024~2025년 한 해 사이 약 3% 줄었습니다. 1950년대에 상세 관측이 시작된 이래 네 번째로 큰 연간 감소 폭입니다. 범위를 넓히면 2015년 이후 10년 동안 부피의 약 4분의 1이 사라졌고, 2022년과 2023년 두 해에만 남아 있던 부피의 약 10%가 빠졌습니다.
작은 빙하는 아예 없어지기도 합니다. GLAMOS 집계로 1973년부터 2016년 사이에만 1,000개가 넘는 소형 빙하가 지도에서 지워졌습니다. 큰 빙하가 물러나는 건 눈에 보이는 변화지만, 작은 빙하의 소멸은 그 골짜기의 물길 자체가 바뀌었다는 신호에 가깝습니다.
얼음이 빠진 자리에 남는 것
빙하가 이렇게 물러날 때 나오는 게 사람의 흔적만은 아닙니다. 얼어 있던 암반과 얼음의 결속이 함께 풀리면서 낙석과 사면 붕괴 위험이 커질 수 있습니다. 스위스 알파인 클럽도 올여름 폭염과 적설 부족으로 산악 지형이 불안정해졌다며 등반객에게 주의를 당부했습니다. 여름 알프스로 트레킹이나 등반을 계획 중이라면 날씨 예보만 볼 게 아니라, 현지 산악회와 산장이 내는 루트 상태 공지를 함께 확인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유해가 나왔다는 사실 자체가 빙하가 얼마나 녹았는지를 재는 눈금은 아닙니다. 다만 34년 동안 사람이 닿을 수 없던 얼음 속 한 지점이, 지금은 등산객이 걸어서 지나가는 자리가 됐다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비슷한 발견이 앞으로 몇 건이나 더 이어질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참고
- 채널A, 뉴스스페이스, 동아일보, 경기일보, KBS 뉴스, 중앙일보, 한국경제, 스위스 SR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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