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가 튀르키예에서 전기차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그것도 새로 지은 공장이 아니라, 1997년에 준공돼 30년 가까이 내연기관차를 찍어내던 곳입니다.
왜 새 공장을 짓지 않고, 하필 이 낡은 공장을 골랐을까요.
3줄 요약
1. 현대차 첫 해외 공장에서 아이오닉3 양산이 시작됐습니다
2. 2년간 기술자 1천 명, 설비 절반을 교체했습니다
3. 신설이 아니라 개조를 택했다는 점이 핵심입니다
1997년에 지은 라인에서 전기차를 뽑는다
지난 14일(현지시간) 튀르키예 코자엘리주 이즈미트공장에서 신형 아이오닉3 양산 시작을 알리는 기념식이 열렸습니다. 이 공장은 '포니 정'이라 불린 고 정세영 명예회장 시절인 1997년 준공된 현대차의 첫 해외 생산 거점입니다. 지금까지는 소형 내연기관 차종을 주로 만들어 왔습니다.
전기차는 내연기관차와 구조도, 생산 공정도 다릅니다. 엔진과 변속기가 들어가던 자리에 배터리 팩이 들어가고, 차체를 조립하는 순서 자체가 바뀝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완성차 업체는 전기차 전용 공장을 새로 짓는 쪽을 택해 왔습니다.
현대차는 반대로 갔습니다. 2년간 기술자 약 1천 명을 투입하고, 노후 설비의 약 50%를 새것으로 교체했습니다. 지난달에는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직접 공장을 찾아 양산 품질을 점검했습니다. 30년 가까이 돌아간 조립라인을 이 정도로 뜯어고치는 일은 흔치 않습니다.
왜 새로 짓지 않았을까
새 공장을 지으면 설계부터 자유롭습니다. 전기차에 맞는 라인을 처음부터 그릴 수 있습니다. 대신 부지 확보부터 인력 채용, 숙련까지 몇 년이 더 듭니다.
기존 공장을 고치면 그 시간을 건너뜁니다. 라인은 이미 있고, 그 라인을 돌려본 사람도 이미 있습니다. 바꿔야 할 것은 설비와 공정이지 사람이 아닙니다. 기술자 1천 명을 2년간 투입했다는 말은, 뒤집으면 새 공장이었다면 그 인력을 처음부터 뽑아 가르쳐야 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물론 대가가 있습니다. 30년 된 건물의 층고와 기둥 간격, 기존 라인의 동선은 바꾸기 어렵습니다. 전기차 전용으로 설계된 공장만큼의 효율은 나오기 힘듭니다. 현대차는 그 제약을 감수하고 시간을 산 셈입니다.
4만 대라는 숫자를 어떻게 볼까
아이오닉3는 이즈미트공장에서 양산돼 하반기부터 유럽 시장에 순차적으로 판매됩니다. 현대차가 제시한 목표는 내년부터 연간 4만 대 이상입니다.
4만 대는 큰 숫자가 아닙니다. 유럽 전기차 시장 전체로 보면 미미한 물량입니다. 다만 이 숫자를 읽을 때 함께 봐야 할 것이 있습니다. 튀르키예에서 글로벌 완성차 업체가 승용 전기차를 현지 생산하는 것은 아이오닉3가 처음입니다. 그동안은 튀르키예 토종 브랜드 토그(TOGG)만 자국에서 전기차를 만들어 왔습니다.
여기서 현지 생산이 갖는 무게가 나옵니다. 카즈르 튀르키예 산업기술장관은 기념식에서 현대차 측과 만나, 토그가 받는 장기 할부판매 같은 인센티브를 아이오닉3에도 적용하는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닙니다. 다만 현지에서 만들면 현지 대우를 받을 여지가 생긴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중국 BYD가 멈춘 자리
비교 대상이 하나 있습니다. 중국 비야디(BYD)는 2024년 7월 튀르키예 정부와 전기차 공장 건설 투자협약을 맺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그 계획을 보류하고 유럽 내 다른 후보지를 찾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새로 짓는 공장은 이렇게 멈출 수 있습니다. 아직 아무것도 없는 부지라면 계획을 접는 비용도 그만큼 작습니다. 반면 30년째 돌아가고 있는 공장은 접기가 어렵습니다. 이미 사람이 일하고 있고, 이미 차가 나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김용진 현대차 튀르키예법인장이 기념식에서 "튀르키예에서 약 30년간 생산과 수출을 해온 경험을 바탕으로 중요한 새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말한 것도 이 지점을 겨눈 표현으로 읽힙니다.
이번 기념식이 열린 장소도 상징적입니다. 새로 지은 건물이 아니라, 완성차 생산의 막바지 점검을 맡는 리페어 라인의 컨베이어벨트 옆이었습니다.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주최 측은 그 자리에 단상을 차리고 튀르키예 국기를 연상시키는 무광 빨간색 아이오닉3 한 대를 세워 뒀습니다.
전기차 전환을 지켜볼 때 흔히 보는 것은 신설 공장 준공식입니다. 이번 사례는 다른 경로를 보여줍니다. 앞으로 다른 업체의 전기차 생산 계획을 볼 때, 새로 짓는지 고쳐 쓰는지를 함께 보면 그 회사가 무엇을 아끼려 하는지가 드러납니다.
참고
- 연합뉴스, 조선일보, SBS Bi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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