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이 지난 12일 국내 임직원 전원에게 여름 보양식을 보냈습니다.
받는 사람은 6만9000여 명, 비용은 30억 원이 넘습니다. 회사 돈이 아니라 회장 개인 돈이었습니다.
같은 주에 그가 받은 보수 액수도 공개됐습니다. 두 숫자를 나란히 놓으면 무엇이 보일까요.
3줄 요약
1. 김승연 회장이 사재 30억으로 보양식을 보냈습니다
2. 한 명당 4만 원대, 같은 주 보수는 48억이었습니다
3. 기사가 많다고 확인된 사실이 느는 건 아닙니다
삼계탕과 갈비탕, 6만9000명에게
한화그룹에 따르면 김 회장은 지난 12일 임직원 자택으로 삼계탕과 갈비탕, 설렁탕으로 구성된 보양식 세트를 발송했습니다. 국내 전 임직원 6만9000여 명이 대상이었고, 비용은 30억 원이 넘습니다. 이 돈은 회사 자금이 아니라 김 회장 개인 자금으로 충당됐습니다.
30억 원을 6만9000여 명으로 나누면 1인당 4만 원대입니다. 삼계탕 한 그릇 값 정도입니다.
김 회장은 선물에 편지도 함께 보냈습니다. 그는 "끊임없는 도전과 난관 속에서도 묵묵히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준 임직원 여러분의 헌신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며 "작은 정성이나마 가족의 건강에 보탬이 되길 바란다"고 적었습니다. 동아일보는 이번 선물이 무더위 속에서 일해 온 임직원의 노고를 격려하려는 취지이며, 임직원의 사기를 높이고 내부 결속을 다지려는 목적으로 풀이된다고 전했습니다.
2004년부터 이어진 방식
이번 보양식이 갑자기 나온 선물은 아닙니다. 김 회장은 2004년부터 매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앞둔 임직원 자녀들에게 합격을 기원하는 선물과 격려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동아일보에 따르면 지난해까지 누적 수령자는 약 8만 명입니다.
코로나19가 퍼졌을 때는 감염된 임직원에게 쾌유를 비는 편지와 꽃바구니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명절에 한 번 하고 끝나는 이벤트가 아니라, 20년 넘게 되풀이돼 온 방식이라는 뜻입니다.
한화그룹 관계자는 "임직원과 가족의 건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게 김 회장의 지론"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다만 이 말은 회사 쪽 설명입니다. 회사가 자기 회장을 어떻게 설명하는지는, 회장이 실제로 어떤 사람인지와 다른 이야기입니다.
열네 건의 기사, 두 개의 취재
이 소식을 전한 동아일보와 경향신문 기사를 나란히 놓고 보면 구성이 거의 같습니다. "한화그룹에 따르면"으로 시작해 6만9000여 명, 30억 원, 삼계탕·갈비탕·설렁탕이라는 세 가지 메뉴, 그리고 편지 속 같은 문장까지 순서만 다를 뿐 내용이 겹칩니다. 같은 소식을 다룬 기사는 하루 사이에 열 건이 넘게 쏟아졌고, 제목만 '의리 끝판왕', '통 큰 한방', '보양식 쐈다'로 갈렸습니다.
이런 일치는 두 매체가 각자 취재했다기보다, 회사가 배포한 자료를 각자의 방식으로 옮겨 썼을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훈훈한 기업 소식일수록 여러 매체에 비슷한 문장으로 동시에 실립니다. 기사 수가 많다고 검증된 정보가 늘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열 건을 다 읽어도 확인되는 사실은 회사가 내놓은 것 하나뿐입니다.
검색창에 뜬 기사 개수를 신뢰도로 착각하지 않는 법은 간단합니다. 첫 문장을 봅니다. "○○에 따르면"으로 시작하는 기사가 대부분이면, 그 '○○'가 유일한 취재원입니다.
같은 날 공개된 48억
같은 시기에 김 회장에 관한 다른 소식도 전해졌습니다. 뉴시스와 뉴스1 보도에 따르면 김 회장은 올해 상반기 한화시스템과 한화비전 두 계열사에서 48억 원대의 보수를 받았습니다. 뉴시스는 이 금액이 작년과 같은 수준이라고 전했습니다.
30억과 48억은 성격이 다른 돈입니다. 하나는 개인 주머니에서 나간 돈이고, 다른 하나는 회사에서 들어온 돈입니다. 두 소식이 같은 주에 나왔다고 서로 연결돼 있다는 뜻도 아닙니다.
다만 열네 건의 기사 중 보양식을 다룬 것과 보수를 다룬 것의 온도 차는 분명합니다. 앞의 것에는 '의리'와 '통 큰'이 붙었고, 뒤의 것은 액수만 건조하게 적혔습니다. 상반기 보수 공시는 법이 정한 의무 공개이고, 보양식은 회사가 알린 소식입니다. 회사가 알리고 싶어 하는 이야기와 알려야만 하는 이야기는 원래 온도가 다릅니다.
이번 소식에서 가져갈 것은 30억이라는 액수가 아니라 그 30억이 어떤 경로로 우리 눈앞까지 왔는가입니다. 기업 미담이 검색창을 채울 때, 세어야 할 것은 기사 수가 아니라 취재원 수입니다. 그 수가 하나라면, 읽은 것은 열 건의 뉴스가 아니라 한 건의 보도자료입니다.
참고
- 동아일보, 경향신문, 뉴시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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