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5월 일본 도치기현 아시카가시에서 네 살 마쓰다 마미 양이 납치돼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이 사건으로 스가야 도시카즈 씨가 잘못 체포됐고, 뒤늦은 DNA 재감정은 그 판단을 뒤집었습니다.
한 사건의 오판은 왜 북간토 지역의 다른 미제 사건까지 다시 보게 했을까요.
3줄 요약
1. 아시카가 사건은 DNA 재감정으로 드러난 오판입니다.
2. 스가야 씨의 DNA형은 범인과 달랐습니다.
3. 5건의 동일범 여부는 결론 나지 않았습니다.
네 살 피해자 사건과 17년 뒤 DNA 재감정
문춘 온라인에 따르면, 마쓰다 마미 양은 1990년 5월 아시카가시의 한 파친코점에서 납치됐습니다. 이튿날 인근 와타라세강 하천부지에서 시신으로 발견됐습니다.
당시 경찰이 막 도입한 DNA형 감정과 강요된 자백이 스가야 도시카즈 씨의 오인 체포를 낳은 결정적 근거로 지목됐습니다. 스가야 씨는 수감 중에도 무죄를 주장했습니다. 체포 17년 뒤 최신 감정법을 활용한 DNA 재감정이 이뤄졌고, 스가야 씨의 DNA형은 범인의 DNA형과 일치하지 않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이 사건이 오판에 따른 사건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난 이유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DNA 감정이라는 표현 자체가 판단의 정확성을 보장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당시 감정 결과와 자백이 한 사람의 삶을 바꿨지만, 재감정 결과는 두 DNA형이 다르다는 사실을 보여줬습니다.
아시카가시와 오타시에 남은 다섯 사건
아시카가 사건은 북간토 연쇄 유아 유괴·살인 사건을 다시 주목하게 했습니다. 1979년부터 1996년까지 도치기현 아시카가시와 이웃한 군마현 오타시에서 어린 여자아이 다섯 명이 피해를 본 유사 사건이 이어졌습니다.
1979년 아시카가시에서 다섯 살 후쿠시마 마야 양이 살해됐고, 1984년에는 같은 시에서 다섯 살 하세베 유미 양이 살해됐습니다. 1987년 군마현 오타시에서는 여덟 살 오사와 도모코 양이 살해됐으며, 1990년의 마쓰다 양 사건이 뒤를 이었습니다. 1996년 오타시에서는 네 살 요코야마 유카리 양이 실종됐습니다.
야후! 뉴스 보도에 따르면 다섯 사건은 모두 미제로 남아 있습니다. 피해자가 어린 여자아이였다는 점, 파친코점이 납치 장소였던 사건이 세 건이라는 점, 하천부지가 유기 장소였던 사건이 세 건이라는 점, 휴일이나 주말에 발생했다는 점이 공통점으로 거론됩니다.
다만 다섯 사건을 한 사람이 저질렀다고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일본 경찰청도 동일범의 가능성을 부정할 수 없다는 입장으로 전해졌습니다. 아시카가 사건의 재감정은 한 사건의 잘못된 수사를 바로잡는 데 그치지 않고, 아직 해결되지 않은 피해자들의 사건을 다시 살펴야 하는 이유를 남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