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애나 전 웨일스 왕세자비의 남동생 찰스 스펜서 백작이 회고록에서 1997년 장례 준비 당시의 기억을 공개했습니다.
그의 서술은 찰스 3세 국왕 측의 이례적인 반박을 받으며, 오랜 가족사의 기억 자체가 논쟁의 중심이 됐습니다.
쟁점은 과거 대화의 진위를 새로 확정하는 일이 아니라, 서로 다른 회고가 공개적으로 맞서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3줄 요약
1. 찰스 3세와 스펜서의 기억이 엇갈렸습니다
2. 쟁점은 다이애나 장례 준비 대화입니다
3. 회고록의 대화는 확정 사실이 아닙니다
두 왕자가 관 뒤를 걸었던 1997년 장례식
찰스 스펜서 백작은 회고록 《스완 송: 다이애나, 나의 누이》에서 누이 다이애나가 사망한 직후 왕실과 나눈 대화를 자신의 기억에 따라 적었습니다. 다이애나는 1997년 8월 프랑스 파리에서 교통사고 뒤 사망했습니다.
공방의 핵심에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열린 장례식의 행렬이 있습니다. 당시 15세였던 윌리엄 왕자와 12세였던 해리 왕자는 어머니의 관 뒤를 걸었습니다. Female First 보도에 따르면 스펜서는 두 소년의 행렬 참여에 반대했다고 말했습니다.
스펜서는 장례 준비를 두고 당시 찰스 왕세자와 격한 전화 통화를 했으며, 그가 다이애나를 곧 잊게 될 것이라는 취지의 말을 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는 스펜서의 회고이며, 해당 전화 대화의 내용이 독립적으로 확정된 사실로 제시된 것은 아닙니다.
버킹엄궁이 반박한 기억의 문제
버킹엄궁은 책에 통상 논평하지 않는다는 전제와 함께, 형제자매를 잃은 고통이 시간이 지나도 이성적 판단과 기억에 영향을 주고 다른 사람이 알아차리지 못하는 방식으로 기억을 물들일 수 있다는 취지의 성명을 냈습니다. 국왕 측이 스펜서의 서술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스펜서는 이후 BBC 인터뷰에서 문제의 발언은 정확히 들은 말이라며 자신의 설명을 유지했습니다. 한쪽은 특정 대화를 기억으로 제시하고, 다른 한쪽은 그 기억의 신뢰성에 이의를 제기하는 구도입니다. 그래서 이 사안은 누가 과거의 상실을 더 크게 겪었는지를 가르는 문제가 아니라, 회고가 역사 기록처럼 읽힐 때 생기는 충돌에 가깝습니다.
사진 보도 주장에서는 사과도 나왔습니다
회고록은 다른 대목에서도 논란을 낳았습니다. 스펜서는 1990년대 다이애나의 운동 사진이 보도된 일과 관련해 방송인 피어스 모건을 잘못 지목했다며 사과했습니다. 사진이 실렸을 당시 모건이 데일리 미러 편집자였다고 잘못 추정했다는 설명입니다.
모건은 책의 주장과 관련해 법적 대응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한 대목의 수정만으로 회고록 전체를 단정할 수는 없지만, 장례 준비 대화처럼 강한 표현이 담긴 서술도 저자의 기억과 확인된 기록을 구분해 읽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해졌습니다.
이번 논란은 찰스 3세의 새 정책이나 왕실의 공식 결정이 아닙니다. 다이애나의 죽음 이후 남겨진 가족들이 같은 시간을 어떻게 기억하는지를 두고, 회고록과 왕실 성명이 정면으로 충돌한 사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