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로봇 이야기가 부쩍 늘었습니다.
사람처럼 걷는 로봇, 인도로 다니는 배달로봇, 공장 안에서 팔 하나만 움직이는 기계가 전부 로봇이라는 한 단어로 묶여 나옵니다.
그런데 이 셋은 적용받는 규정도, 실제로 팔린 대수도 서로 다릅니다.
3줄 요약
1. 로봇은 산업용과 서비스용으로 먼저 갈립니다.
2. 한국 제조업 로봇 밀도는 만 명당 1,220대입니다.
3. 인도 다니는 로봇은 법이 보행자로 봅니다.
'로봇'이라고 부르려면 조건이 있습니다
국제표준 ISO 8373은 산업용 로봇을 자동으로 제어되고, 재프로그램이 가능하며, 3축 이상으로 움직이는 다목적 조작 장치로 정의합니다.
여기서 걸러지는 게 꽤 많습니다. 한 가지 동작만 반복하도록 만들어져 다른 일을 시킬 수 없는 기계는 아무리 복잡해도 이 정의에 안 들어갑니다. 자동화 설비와 로봇을 가르는 선이 성능이 아니라 바꿔 쓸 수 있느냐에 있는 셈입니다.
자동차 공장에서 차체를 용접하고 도장하는 팔이 여기 해당합니다. 사람이 옆에 붙어 있지 않고, 정해진 궤적을 하루 종일 반복합니다.
서비스 로봇은 조건이 하나 더 붙습니다
식당에서 접시를 나르는 로봇, 건물을 도는 청소 로봇, 물류창고에서 선반을 들어 올리는 로봇은 산업용과 결정적으로 다른 환경에 놓입니다. 주변에 사람이 있습니다.
공장 로봇은 펜스로 사람을 물리적으로 떼어 놓아 안전을 확보합니다. 그런데 식당에 펜스를 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과 같은 공간에서 일하는 협동로봇에는 별도의 안전 규격이 붙습니다. ISO/TS 15066은 로봇이 사람과 부딪혔을 때 허용되는 힘과 압력을 신체 부위별로 나눠 정해 뒀습니다. 이마에 닿는 힘과 팔뚝에 닿는 힘의 한계가 다릅니다.
로봇이 느려 보인다면 성능이 나빠서가 아닐 수 있습니다. 이 한계 안으로 들어오려면 속도를 줄여야 합니다.
한국은 이 분야에서 이미 세계 1위입니다
국제로봇연맹이 내는 세계 로봇 보고서의 2024년 집계에서 한국의 로봇 밀도는 노동자 만 명당 1,220대로 세계에서 가장 높았습니다. 로봇 밀도는 노동자 만 명당 산업용 로봇이 몇 대냐를 보는 지표입니다.
미국은 307대로 8위였습니다. 대륙별 평균은 서유럽 267대, 북미 204대, 아시아 131대입니다.
한국이 앞선 이유로 국제로봇연맹은 로봇 수요가 큰 전자·자동차 산업이 발달한 점을 꼽았습니다.
여기서 짚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이 숫자는 전부 산업용 로봇을 센 것입니다. 요즘 화제인 사람 모양 로봇은 이 통계에 거의 잡히지 않습니다. 로봇 밀도 1위와 휴머노이드 경쟁력은 다른 이야기입니다.
인도로 다니는 로봇은 법적으로 보행자입니다
이건 아는 사람이 의외로 적습니다.
2023년 11월 17일부터 지능형로봇법과 도로교통법 개정안이 시행되면서, 운행안전인증을 받은 실외이동로봇에 보행자 지위가 부여됐습니다. 그 전까지는 인도로 다닐 근거가 없었습니다.
인증 대상은 질량 500kg 이하, 속도 15km/h 이하입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지정한 기관에서 운행구역 준수와 횡단보도 통행 등 16가지 항목을 통과해야 합니다.
보행자가 됐으니 보행자 규칙을 지켜야 합니다. 신호를 위반하거나 무단횡단을 하면 안 됩니다. 다만 로봇에게 범칙금을 물릴 수는 없으니, 위반하면 운용자에게 3만 원이 부과됩니다. 보도에서 로봇을 운영하는 사람에게는 보험이나 공제 가입 의무도 붙습니다.
책임을 기계가 아니라 사람에게 되돌려 놓는 이 구조가, 앞으로 나올 다른 자율 기계에도 그대로 쓰일 틀입니다.
'피지컬 AI'라는 말이 늘어난 이유
문장을 쓰고 그림을 만드는 AI는 결과물이 화면 안에 있습니다. 틀리면 지우면 됩니다.
로봇에 올라가는 AI는 결과물이 관절의 움직임입니다. 카메라와 힘 센서로 들어온 정보를 실제 동작으로 바꿉니다. 틀리면 물건이 깨지거나 사람이 다칩니다. 실패의 성질 자체가 다르다는 뜻이고, 요구되는 학습 데이터도 텍스트가 아니라 동작 기록입니다.
사람 모양 로봇이 주목받는 것도 여기서 이어집니다. 계단, 문손잡이, 공구, 작업대는 전부 사람 몸에 맞춰 만들어져 있습니다. 로봇을 사람 모양으로 만들면 환경을 고치지 않아도 됩니다.
제가 눈여겨보는 건 사람 모양이라는 겉모습이 아니라 이 계산입니다. 공장을 새로 설계하는 비용과 로봇에 두 다리를 붙이는 비용 중 어느 쪽이 싼가. 로봇 형태를 정하는 것은 결국 그 비교입니다.
시연 영상과 양산은 다른 단계입니다. 실제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인상적인 동작이 아니라 몇 대가 어디서 몇 시간을 돌았느냐입니다.
기사에 로봇이 나오면 먼저 물어보시면 됩니다. 이게 공장 안입니까, 사람 옆입니까. 그것만 갈라도 기사의 절반은 읽힙니다.
개별 기업이나 종목에 대한 판단은 이 글의 범위 밖이고, 투자 결정은 전문가와 상의하시기 바랍니다.
참고자료
- 국제로봇연맹 세계 로봇 보고서 — 로봇 밀도
- KBS 한국 로봇밀도 '세계 1위'…"직원 만 명당 로봇 1,220대"
-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실외이동로봇' 보도 통행 가능해진다…배달·순찰 로봇 허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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